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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s/1934

타향살이 - 고복수 / 1934

by Rainysunshine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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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타향사리)는 대한민국 가수 고복수(髙福壽 19111229 ~ 19720210)가 1934년 일제강점기 때 발표한 곡으로 당시 국내에서 한 달만에 5만장이 팔릴 정도로 크게 히트했다. 2021년 울산음악창작소는 이 곡의 유성기 음반을 복각했다. 

 

김능인(金陵人, 19100813 ~ ) 작사, 손목인(孫牧人, 19130413 ~ 19990109)이 작곡했으며 원제목은 '타향(他鄕)'이었다. 손목인이 탄생 100주년 기념 저서 <손목인의 가요인생>에서 일본 유학 중 여름방학을 틈타 귀국했을 때 있었던 상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OK레코드 사장 이철씨는 같은 회사 문예부장으로 있던 김능인씨가 작사한 가사를 들고 와서 제게 곡을 한 번 붙여보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대중음악이 전공은 아니나 작곡에는 겁낼 이유가 없어 가사를 음미하며 닷새 만에 완성했죠. 가사 내용이 애수와 한에 젖어있는 내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인지 어렵지 않게 써낼 수 있었습니다. 곡이 완성되자 이철씨는 가수를 물색했고 당시 빅터사가 주최한 전국가요대회에서 2등으로 뽑힌 고복수를 데리고 왔어요. 연습실에서 내 피아노반주에 맞춰 불러보게 했는데 소리가 구수한 것이 듣기에 괜찮더군요. 사무실 직원들도 저마다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음악을 처음 작곡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어요. 잠을 거의 자지 않으면서 고복수와 함께 곡에 열중한 뒤에 일본 데이치쿠 레코드사 녹음실에서 취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녹음을 듣고서야 겨우 안도했죠. 일본까지 가서 취입한 것은 당시 국내에서는 제작설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찌나 기분이 좋던 지 고복수와 나는 테이프를 들으며 얼싸 안고 울기까지 했습니다.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이 곡의 의미를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이 곡과 함께 SP로 취입했던 이원애곡이 A면이었고 이 곡은 B면이 되었습니다. 출반되자마자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죠. 주문이 쇄도하자 이 곡을 A면으로 바꿔서 다시 내놓았고 더욱 잘 팔렸습니다." 이 곡을 계기로 손목인은 학업을 늦추고 OK와 전속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에 뛰어 들었다.  

 

가사는 어디를 가도 자신의 고향(고국)이 없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용인 것 같다. 손목인은 위의 책에서 "일제하에서 고국을 잃고 타향살이의 설움을 받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곡을 들으며 슬픔을 달랬어요... 이 곡은 멜로디 자체가 짧고 쉽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도 한 번만 들으면 따라부를 수 있습니다. 고복수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모든 관객들이 어느새 다 따라 부르고 있어 아예 마이크는 객색으로 돌려 놓곤 했습니다. 만주 하얼빈 공연 때는 그 감격이 더욱 진했어요. 고향을 떠나 북간도에서 오랜 객지 생활을 하던 동포들에게 이 노래는 특별한 것이었고... 앙코르를 청해 무려 열번이나 반복했죠... 김능인은 이 곡이나 짝사랑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남녀의 사랑이야기보다는 나라잃은 민족의 한을 담은 내용이나 고달픈 인생을 읊은 가사를 써서 당시 대중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줬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20221014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 때는 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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