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내 곁에는 대한민국 싱어 송 라이터 김현식(19580218 ~ 19901101)의 사후 3개월여 만에 나온 유작 앨범 <Kim Hyun Sik Vol.6>에 수록한 곡으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아 높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해 국내 각종 차트의 1위는 물론이고 당시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했던 골든 디스크 대상을 비롯해 연말 시상식의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다. 이 곡이 크게 히트한 데에는 박정화 극본의 MBC 드라마 <무동이네 집>의 영향이 컸다. 당시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은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이 앨범이 300만장 나갔다고 말했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 - 호주>에서 김연우가 불러 1등을, KBS2 <불후의 명곡 2>에서 임정희가 불러 우승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2015년 <나는 가수다 3>에서 하동균이 부른 것을 비롯해 리치, 터보, 김장훈, 박강성, JK김동욱, 럼블피시, 김정민, 아이유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이 곡의 제목은 2번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첫 번째는 1998년 이홍구 극본으로 KBS1에서, 두 번째는 2011년 김사경 극본으로 MBC에서다. 또한 2009년에는 박진표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 2012년에는 이 곡을 작사, 작곡한 오태호의 곡들로 꾸며진 뮤지컬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오태호의 부인은 일산에서 이 노래의 이름과 같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은 송홍섭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몸이 그렇게 아픈 줄 몰랐는데…. 병세가 나빠지니까 힘들어서 상식 밖의 행동도 많이 했죠. 하지만 그때 정말 감성적으로 완벽한 노래가 나왔어요.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되는 사람이었어요. 감정의 탄력이 대단했죠. 그런 뮤지션이 또 나올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고 2011년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김현식이 녹음하는 날, 술병을 들고 스튜디오에 와서 방해가 되었어요. 그래서 때린 적이 있었죠. 그는 집에 업혀갔고 나중에 알고 보니 병이 깊어 스스로 못견뎌한 것이었어요. 그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것을 몰랐죠. 원래 남의 일 참견 안하는 사람이지만...나중에는 후회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승환의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를 회 한 접시에 넘겼듯 오태호는 이 곡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준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오태호는 레이디경향 등을 비롯한 다수의 매체에서 “이 곡을 제가 불렀으면 절대 이 정도로 사랑받지 못했을 거예요. 저에게 선물을 주고 가신 느낌이죠"라고 말했고 청사초롱 등의 매체에서는 아직도 이 곡이 저작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곡은 앞부분 한 소절의 유사성 때문에 일본 가수인 고바야시 아끼꼬(蔡幸娟)의 Fall In Love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두 곡을 다 좋아했던 팬으로서 이후의 전개를 보면 표절인 것 같진 않다.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한 소절만 가지고도 표절을 낙인찍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가령 신성우의 슬픔이 올 때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Creep처럼.
오태호는 1991년 동아일보, 2014년 발간한 저서 <비갠 아침 바람의 향기>와 레이디 경향, 청사초롱을 비롯한 여러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곡을 김현식이 부르게 된 과정을 말했다. 다음은 그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저의 기억으론 1989년, 그러니까 제가 22세 때 쓴 곡입니다. 신촌블루스에서 엄인호 선배님과 기타를 연주하며 많은 것을 배우던 시절로, 어느 지방 공연 때였어요. 당시 김현식 선배님이 게스트로 함께 투어를 다니셨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 제가 혼자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는 곡을 저만치에서 듣고는 그 곡이 뭐냐고 물어 오셨죠. 아마 당시 유행하던 곡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전 얼마 전에 제가 만들어본 곡(습작)이라고 얘기하자 ‘나 줄래?’ 하셨고, 저는 큰 영광이기 때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세요’ 했습니다... 그렇게 투어가 끝나고 서울 방배동 어느 카페에서 만나 제가 어설프게 부른 노래 테이프와 악보를 선배님에게 넘겨준 후 꽤 오랜 시간을 뵙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어느 날 동네 레코드 가게를 지나다가 선배님의 새 앨범(5집)이 나왔다는 포스터를 보고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어느 면에도 제가 드린 노래는 실려 있지 않았어요. 그때의 실망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러다 선배님이 허무하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1990년 말인가 이듬해 초에 푸른 하늘의 (유)영석이형네 집에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길하고 있는데 영석이 형이 ‘아, 맞다. 태호야, 네 곡이 현식이 형 유작 앨범에 타이틀로 실렸더라’ 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유작 앨범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선배님과 같은 기획사 소속이던 영석이형은 그 소식을 알고 있던 거였죠. 그때는 가수가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곡이 될까 말까 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즈음 제 주변분들 모두 ‘그 곡은 그냥 묻히겠다’고 위로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말했다.
이 곡이 5집에 실리지 않은 것에 대해 김영은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타이틀곡 선정은 100% 제가 결정합니다. 원래대로라면 내 사랑 내 곁에도 넋두리와 함께 5집에 실렸어야죠. 그런데 그 때 생각했던 건 내 사랑 내 곁에는 6집 레퍼토리로 쓰자는 거였어요. 추억 만들기도 그렇고요. 내 사랑 내 곁에는 너무 녹음이 잘 되었어요. 타이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음을 위해) 수록하지 않은 상태로 믹싱이고 녹음이고 5집을 다 끝냈어요. 그런데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어요”라고 말했고 "평소에는 현식이에게 그만하라고 하면 “대장이 됐다고 하면 된 거죠”라고 말하고 끝냈는데 이 곡은 계속하겠다고 우겨 시도 때도 없이 녹음했어요"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단 한번 녹음하고 앨범에 넣었다는 설은 신화화된 것 같다. 김장훈은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 후 김현식편>에서 이 곡을 5집에 싣지 않아 자신이 나중에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라디오 매체에서 오태호는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사실은 ‘집으로’가 아니라 ‘짐으로’예요. ‘시간은 멀어짐으로’라는 의미인데 잘못 부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레이디 경향과의 인터뷰에서는 “‘비틀거릴’이라는 가사에서 술이 연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당시에는 그런 가사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랬던 것이 오히려 신선하다는 반응 이었죠”라고 말했고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가사를 썼냐는 질문이 많은데요. 전 당시 제가 만든 곡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마도 김현식 선배님이 불러서 다르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시적으로는 “시간은 멀어짐으로”가 좋은 것 같은데, 약속시간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간 경험이 있어서 인지 김현식의 해석이 더 와 닿는 거 같다. 지금 들어도 가사에 녹아든 보컬은 정말 절창의 끝을 보여준다.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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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린 가지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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