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한 여운2016. 11. 6. 05:00

 

그 이유가 내겐 아픔 이었네를 처음 들었던 순간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책을 보던 나는 전주를 듣자마자 라디오를 바라보았고 흡인력 있게 다가오는 인트로에서부터 달콤한 멜로디, 몽환적인 느낌이 주는 분위기에 그 즉시 포로가 되었다(지금도 전주를 들으면 설레곤 한다). 하지만 앨범을 사진 않았다. 예외도 있지만, 난 당시 앨범을 살 때 적어도 2-3곡 이상을 들어보고 사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카세트테이프를 가져오면 일단 들어보고 내 취향과의 온도를 점검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 곡뿐만 아니라 그때는 어렸나봐요나 후에 문근영이 영화 <어린신부>에서 리메이크해 히트시키는 난 사랑을 아직 몰라 등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왔고 테이프 있는 친구를 수소문해 기어이 전곡을 다 들어보았지만 뒷면의 유현상이란 이름이 구매를 망설이게 했다. 백두산의 해체 소식을 공식적으로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도 유현상이 후배양성을 위해 밴드를 그만 둔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그 원인이 마치 이지연에게라도 있는 양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백두산2집을 영어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방송을 출연금지 당했다. 자신들의 음악을 알릴 기회조차 주지 않는 정부를 원망하며 김도균은 영국 유학길에 올랐고 유현상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프로덕션 상황을 보며 음악계에서 살아남을 방도를 모색했다. 그러니까 이지연의 데뷔는 백두산의 해체 다음의 일이었다.

 

유현상은 일본으로 건너가 나카모리 아키나, 히카루 겐지 등의 아이돌 공연을 관람한 후 팬으로 만났던 경복여상의 밴드 재뉴어리의 보컬 이지연을 생각해냈다. 백두산1집을 발표하고 난 뒤 많은 스쿨밴드들이 찾아와 연습을 구경하곤 했는데 재뉴어리는 그들 중 하나였다. 유현상은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백두산 프로덕션을 만들었고 이지연을 불러 조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이 반대했다. 이에 유현상은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긴 머리를 자르면서까지 삼고 초려했고 부모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만둔다는 조건을 걸고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백두산을 결성하기 전 퇴계원에서 두문불출하고 1년간 만들었던 곡들을 추렸다.

 

백두산을 통해 유현상이 멜로디를 뽑는 솜씨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지연 1집은 유현상을 완전히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 거기에 지명길, 장경수가 만든 가사, 김명곤이호준의 편곡은 곡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전 곡이 다 맘에 들었지만 특히 긴 외출의 가사를 너무나 좋아했고 친구와 어쩌면 우린 첨부터 서로 엇갈린 길목에서 서툴게 사랑하다 헤어져야 했었나라는 가사의 후렴구가 지닌 탁월성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느낌이라는 주제를 지닌 난 사랑을 아직 몰라에서 느낌이 중요해라고 단호하게 상대방을 잘라내는 부분을 아주 섹시하다고 느끼곤 했다. 지금은 엄친아스펙이란 말이 흔하게 쓰일 정도로 조건이 좌지우지 하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사랑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정도로. 이것은 기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 외에도 안개모습, 마지막 잎새, 남겨진 슬픔, 사랑 등으로 인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2집은 바로 샀다. 당시 작곡에 물이 오른 전영록이 만든 바람아 멈추어다오KBS <가요톱텐>에서 5주간 1위를 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고 그 후론이나 슬픈 안녕, 같은 반 친구들과 부른 졸업도 라디오에서 많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1집보단 감동이 덜 했지만 그래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1집과 달리 앨범 전체를 다 듣는 경우는 없어졌지만 지금도 서툰 이별은 가끔 듣는다. 유현상의 백미라 생각한다. 

 

이후 이지연Love For Night으로 ABU 가요제 3위 입상, 3집의 늦지 않았어요 등이 히트하며 여전한 인기를 누렸지만 라디오 방송에서 욕을 했다는 설, 이상은의 뺨을 때렸다는 설, 유현상과의 동거설 등 악성 루머들이 잇단 터지면서 마음고생을 한다. 그리고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가수와 모든 걸 다 내던지고 사라져버린다. 직원들을 늘리며 자신을 찾아온 많은 연습생들 중(이주노양현석도 있었다고 한다)에서 골라 히카루 겐지를 벤치마킹한 야차를 만든 유현상김종서를 보컬로 한 카리스마, 조항조, 작은하늘 등을 소속가수로 포섭했지만 이지연의 증발로 인해 대형기획사의 꿈을 접어야 했다.

 

4집을 통한 컴백에 실패한 이지연은 요리사가 되었고 수영선수 최윤희와의 결혼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현상은 트로트 가수를 거쳐 김도균과 함께 다시 백두산으로 돌아왔다. 이지연이 가수로 남지 못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보다 팬들에게 더 안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오래도록 하지 않았을 테니 가수로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이제 무리겠지만 아주 잘 어울리는 어떤 노래를 만나 한 번 정도는 그 목소리를 통해 꿈을 꾸었던 과거의 어느 시절과 해후하길 기대해본다.

 

20130304 다음뮤직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2014/07/05 - [1980's/1989] - 바람아 멈추어다오 - 이지연 / 1989

2013/03/06 - [대한민국] - 이지연 19701031

 

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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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41913

    참 좋아하던 가수였었는데요.....목소리도 너무 맑고 깨끗하고 기교도 없고 그냥 편안하게 너무 잘불렀지요..

    2017.01.06 12:2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