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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침/한 여운

1980년대 후반 국내 보사노바 음악들

by Rainysunshine 20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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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이 되면 그래도 보사노바를 몇 곡 들어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 보사노바에 대한 첫 기억은 TV로 보았던 프랑스 영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에서 피에르 바루(Pierre Barouh)가 기타를 치며 불렀던 Samba Saravah. 이후에는 샤데이(Sade), 커서는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Wave>를 좋게 들었던 것 같다. 1980년대 후반에는 퓨전에 관심을 보인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하나 둘씩 보사노바 스타일의 곡들을 발표했다. 지금 효기, 나희경, 해랑, 소히, 그룹 블루앤블루처럼 보사노바를 전문으로 하는 가수들의 탄생은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후반 퓨전재즈 바람과 함께 안착한 보사노바 곡들을 살펴보았다.


오래된 친구 (1986) - 어떤날


공연 한 번 하지 않고 TV에 한 번 출연하지 않았지만 (라디오에 두 번 출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이유로 되돌아갔고 또 한 번은 너무 긴장해서 PD와 술 마시다 못나갔다고 한다) 어떤날이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쏘아올린 감성은 일파가 만파가 되어 그 감성을 가슴에 새긴 평론가들에 의해 그 영향력은 고스란히 각종 집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친구거리장소를 친구로 느끼게 해 준 최초의 곡이 아니었나 싶다. 이것은 2집의 초생달덧없는 계절로 이어지고 김현철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동네같은 곡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1988) - 오석준


오석준1집을 내자마자 바로 군에 가야 했기 때문에 얼굴 없는 가수로 라디오를 종횡무진 횡단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가장 목소리와 얼굴이 매치 안 되는 가수 중의 한 명이었다(그 누구보다 더를 부른 이정현과 같은 외모일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한 경험으로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제임스 딘 브래드필드(James Dean Bradfield)가 있다). 송홍섭이 편곡한 이 곡을 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항상 같다. 낮에 삼바에 맞춰 열정적인 춤을 춘 뒤 석양이 내려 어두워진 밤 바닷가에서 시베드에 연인과 누워 시원한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며(가사엔 찻잔이라고 나오지만) 차갑지 않은 바람을 맞는 것.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퍼커션 소리

후인 (1988) - 최성수


최성수후인이 들어있는 세 번째 솔로 앨범은 개인적으로 처음 구매한 최성수의 음반이다. 당시 짝꿍과 서로 카세트테이프를 교환해 가며 들었는데 거의 전 곡이 맘에 들어 테이프를 되돌려주고 난 뒤에도 계속 생각나 살 수밖에 없었다. 후인의 편곡은 유영선이 했다. 그는 앨범의 가장 뛰어난 곡인 내 너를 부르면을 만들었고(이곡은 후에 <Oriental Shock> 앨범에서 리메이크 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상당히 뛰어난 감각의 편곡을 선보인 뮤지션이다. 당시에는 트로트 리듬을 차용했던 축제와 나그네 때문인지 몰라도 이 보사노바 리듬을 트로트의 변형된 형태로 느꼈던 것 같다. 빛이 되고 싶은 그림자 같은 존재를 나타내는 제목이 참 맘에 들었던 곡.

행복하여라 (1988) - 이정선


행복하여라는 원래 이정선1(1976년 앨범)에 수록한 곡이다. 1집의 버전은 지금 들으면 삶의 모진 고난 속에서도 사랑을 지키겠다는 비장미와 다짐이 느껴지지만 <Ballads>란 타이틀이 붙은 8집에선 보사노사 리듬과 어쿠스틱 기타의 애드립 속에서 이정선의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 내적 독백처럼 들린다. 원곡의 숙명처럼 되뇌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빠진 것도 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배우 박해일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에서 소녀와 사랑에 빠진 이적요를 연기하기 위해 1집의 버전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정선 헌정앨범 <이정선 Forever>에서 김현철이 불렀다.

호호호 (1988) - 한영애


한영애 호호호는 이 곡의 작곡가인 이영재들국화최성원, 이장희의 동생 이승희1980년 함께 발표한 옴니버스 형식의 앨범에 지난 겨울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것을 제목을 바꾸고 가사도 조금 개사해 리메이크한 것이다. 이 곡의 보사노바 편곡은 국내 편곡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인물인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했다. 송홍섭한영애가 록으로 방향을 틀 때 토대를 만들고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인물이다. 그것은 송홍섭2010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껏 세션으로 참여한 작업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앨범으로 한영애2<바라본다>를 꼽은 것으로 설명을 대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하지 못한 내 사랑 (1988) - 동물원


동물원하면 떠오르면 보컬 김광석과 작곡가 김창기의 틈바구니에서 나름대로 동물원의 분위기를 재창출해내는 스타일리스트 유준열이 만든 곡이다. 유준열은 고등학교 시절 AFKN TV를 보다 우연히 영화 <007 카지노 로열(007 Casino Royale)>을 보게 되었고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가 부른 주제가 The Look Of Love를 듣고 반해 버렸다. 이때의 강력한 영향으로 그는 대학 3학년 때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곡이 바로 <동물원 1집>에 수록한 이 곡이다. 이 곡은 유준열서른 즈음에 작곡가로 유명한 강승원이 주축이 되어 만든 그룹 우리 동네 사람들1집에서 여성 보컬들의 화음이 돋보이게 리메이크 했다. 이 곡은 다시 박선주에게 영향을 끼친다.

비 오는 날 수채화 (1989) - 강인원, 권인하, 김현식


비 오는 날 수채화는 같은 제목의 영화 주제가로 한 곡을 제외하고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을 강인원이 만들었다. <엽기적인 그녀>2001년 대성공을 거둔 곽재용 감독의 데뷔작이다. TV 프로그램에 나와 강인원이상은의 1집 앨범을 만든 후 매니저를 맡았던 친구가 자신을 배신하는 바람에 3개월간 칩거하는 도중에 곽재용 감독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와 만들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가사의 의도는 변해버린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을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원래는 김현식권인하의 듀엣 곡이었으나 당시 술이 있어야 노래를 불렀던 김현식이 건강상의 이유로 4소절밖에 부르지 못해 나머지 부분을 채우기 위해 강인원이 투입되었다.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1989) - 봄여름가을겨울


평론가들이 뽑는 명반 리스트에 항상 올라가는 신촌블루스2집에 수록된 곡으로 김종진이 만들고 봄여름가을겨울이 불렀다. 이 곡은 블루스 곡이 아니기 때문에 앨범에서 이질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곡의 완성도가 뛰어나 앨범의 값어치를 오히려 상승 시킨 곡이기도 하다. 이정선과 신촌블루스의 1, 2집을 엮어낸 엄인호는 2003 웨이브와의 인터뷰에서 김종진의 곡을 넣게 된 이유에 대해 당시 (동아기획)김영 사장이 봄여름가을겨울을 키우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김영 사장이 부탁을 해서 음반이나 공연에 참여시켰어요라고 말했다. 봄여름가을겨울1집을 CD로 발매했을 때 보너스 트랙으로 넣었다

춘천 가는 기차 (1989) - 김현철

어느새 - 장필순 / 청혼 - 이소라

 

김현철 1집을 들었을 때의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은 어스름해질 저녁때였고 장소는 내 방이었다. 비록 오랜만에알 자로(Al Jarreau)와 비슷했지만, 모든 곡에는 가벼우면서도 재지한 느낌의 편곡들과 미성의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껏 가요 속에 담겨있던 모든 끈적임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매끈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춘천 가는 기차. 개인적으로 1990년대 초반부에 해마다 경춘선을 타고 춘천을 다녀오던 의식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 노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건 나희경이 이 곡을 듣고 보사노바 음악에 빠져들게 되어 브라질 유학까지 가게 된 것과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1989김현철은 상당히 다른 보사노바 느낌의 3곡을 편곡한다. 춘천 가는 기차에 살랑거리는 봄 느낌이 있다면(사실 겨울이 배경이다), 장필순어느새내 나이도 희미해져 버리고의 가사와 장필순의 허스키함이 어우러져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1996년 발표한 이소라청혼까지 더하면 김현철은 국내 보사노바의 대중화에 일정부분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1980's/1989] - 춘천 가는 기차 - 김현철 


그대 내 맘에 들어 오며는 (1989) - 조덕배


이 곡은 발표 당시에도 크게 히트했지만 2005조성모의 리메이크 앨범에서 조성모조덕배가 듀엣으로 불러 다시 세인들의 기억 속으로 부상했고 유하 감독의 2006년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이보영조인성이 불러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1970~80년대 몇 안 되는 최고의 키보디스트 중 한 명으로 세션계를 주름잡았던 변성룡이 편곡한 이 곡은 조덕배2012년 결혼한 아내와 밀당을 하면서 만든 곡이라고 밝혔다. 이 곡이 처음 수록된 5집의 표제와 곡 제목은 그대 내 맘에 들어 오며는으로 되어 있으나 조성모, 성시경, 거북이 등의 리메이크 버전과 삼바 분위기로 연출한 조덕배가 9집에 수록한 버전은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으로 표기되어 있다

시간 속에서 (1990) - 박선주


시간 속에서가 수록된 1집은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도 많은 수요가 있었던 GRP 스타일의 퓨전 재즈 열풍 한 가운데 있는 앨범이다. 학창시절 봄여름가을겨울을 듣고 살았던 박선주는 무작정 김종진을 찾아가 프로듀서를 맡아달라고 매달렸고 덕분에 전곡이 그의 손에 의해 요리되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거나 평범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어떤날에서 봄여름가을겨울김현철, 빛과 소금 등으로 이어지는 퓨전계열의 음악들은 당시 주류 가요계가 내놓은 편곡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고 앞의 열거한 뮤지션들에 비해 인정받진 못했지만 박선주1집 역시 그랬다. 이 곡은 박선주가 고등학교 시절 동물원말하지 못한 내 사랑에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다.

가을이 오면 (1987) - 이문세


유고집 <광화문 연가>에서 작곡가 이영훈아름다운 강변에서 호수 같은 물가를 바라보며 썼던 곡이라고 적고 있다. 거를 곡이 없던 전설의 이문세 4집에서 명반이라는 칭호에 강력하게 기여했던 곡이다. 최고의 편곡자 중 한 명인 김명곤이 편곡을 맡았다. 이문세, 이영훈과 더불어 김명곤이란 이름도 회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울한 편지 (1987) - 유재하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 이후로 재조명 받은 곡. 유재하 사후에 유재하의 뮤즈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이 곡은 특히 가사 중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띄웠네부분 때문에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한동안 팬들과 네티즌들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지난날 (1989) - 푸른하늘


푸른하늘2집은 유재하의 영향력이 극대화된 앨범이다. 슬픈 안녕, 그대 다시 오면 등은 유재하를 기린 곡들이고 이 곡 지난날도 제목에서부터 가사의 부분, 부분이 유재하의 지난날 흔적을 느낄 수 있어 거의 오마주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른하늘의 수장 유영석이 얼마나 유재하에 대한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잠도 오지 않는 밤에 (1990) - 박광현


서울대 국악과에 들어갔던 박광현은 집안이 어려워져 통기타 가수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때 이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에 만든 10여 곡을 모아 데모테이트를 만들고 기획사를 돌았다. 그 중에 나무기획이란 회사에서 박광현의 곡들을 샀고 이 곡들은 솔로를 준비 중이던 부활이승철에게로 가 안녕이라 말하지 마와 함께 수록되었다. 이승철의 성공 이후에 박광현은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이 곡을 수록했다. 이 곡은 김건모가 샘플링 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더 유명해졌다. 박광현은 이 곡에 대한 사용허가를 작곡가 김창환에게 주었으나 작곡가 명의가 두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에 항의해 2008년 부당이익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향기로운 추억 (1989) - 박학기


신인이었지만 동아기획, 김현철, 조동익이라는 막강한 네임밸류에 힘입어 인지도를 높인, 박학기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국내 편곡 1인자 조동익의 작품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박학기는 솔로 앨범 전에 동아기획 옴니버스 앨범 <우리노래 전시회>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로 주목을 받았다. 박학기의 1집은 당시 동아기획 앨범들과 더불어 정말 무한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다. 


20150531 현지운 다음뮤직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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