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60s/1964

동백아가씨 - 이미자 / 1964

by Rainysunshine 2022. 11. 3.
반응형

동백아가씨(冬柏아가씨)는 대한민국 트로트 가수 이미자가 1964년 발표한 곡으로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100만장 판매라는 신화가 돌 정도로 크게 히트했다. 이미자SBS <연예뉴스>, MBC <섹션TV 연예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이 곡과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등을 꼽았다. 이미자의 에세이 제목이기도 하다. 

 

1963년 동아방송의 라디오드라마를 영화화 한 같은 제목의 영화 주제가다. 김기 감독의 작품으로 신성일 엄앵란이 출연했고 동백꽃이 많이 피는 부산 다대포항에서 촬영했다. 곡은 김기 감독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이 곡 이후에도 동숙의 노래, 애수, 추풍령 등을 합작한  한산도백영호가 작사, 작곡했다. 한산도는 영화의 대본을 읽고 작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제작사측에 큰 호응을 얻지 못해 최무룡단둘이 가 봤으면이 A면 첫 곡 자리를 차지했다. 1978년 한산도백영호를 고소했다. 백영호가 자신의 도장을 몰래 파 작품을 팔고 작품을 팔 때마다 자신에게 30%씩 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곡을 비롯해 동숙의 노래, 애수, 잘 있거라 고모령 등 작사가로 이름을 올린 110여곡의 작곡가도 사실은 자신이라고 천기누설급 주장을 했다. 백영호도 맞고소했지만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서는 (아마도 둘의 합의에 따라) 한산도가 기소를 취하했고 백영호의 사문서 위조 등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1965년 5개 방송국에서 왜색(일본풍)가요 정화운동이 시작된 후 1968년 2월 방송금지가 되고 1975년 6월 정부의 '공연활동의 정화정책'에 따라 공식적으로 음반 금지곡이 되었다가 1987년 해금되었다. 이미자MBC 라디오 <시선집중>과의 전화 통화에서 "1975년인가 금지곡이 된 후에 일본의 수상과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었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이 이 곡을 지정곡으로 요청해서 부른 적이 있어요. 금지곡이었던 걸 모르셨어요"라고 말했고 에세이집에서는 "맨처음 금지곡이 되었을 때는 그래도 내 몸이 너무 바쁘고 또한 취입한 곡들이 부르는 대로 히트를 하는 편인 데다 방송, 공연, 레코드 취입 등으로 눈코 뜰 새가 전혀 없어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나이도 너무 어려 이런 일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계제가 못 되었어요. 잠시 서운하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쉽게 잊혀졌죠. 하지만 잠시라도 틈이 나거나 상념에 잠길 여유가 생기면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모두 금지곡 결정을 내린 것은 정부에서 이제 나보고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무대에서는 청중들이 원하면 금지곡도 기꺼이 불렀어요. 레코드판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어요. 음반 제작까지 모두 금지시켜 버렸던 것이죠. 정말 기가 막히는 상황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이나 아는 기자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뚜렷한 이유를 모르겠다고만 할뿐이었어요. 그때는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유는 무슨... 그래서 다른 레코드사의 경쟁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곤하곤 했어요. 당시에는 레코드판을 한 장 한 장 일일이 손으로 구워내던 때라 하루에 몇 백장 정도밖에 만들 수가 없었어요. 그 때문에 특약점에만 몇십 장 내주고 소매점에는 겨우 열 장 미만으로 배분했죠. 그래서 일반인들이 판을 사려면 다른 레코드도 몇 장 더 사야 했어요. 일종의 끼워팔기죠. 이런 지경이라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든 이 열기에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을 거예요... 기자들이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답변이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장 우스운 것은 어느날 박정희 대통령이 주관하는 청와대 귀빈 만찬 연회에 갔을 때였어요. 박대통령은 내게 이 곡을 꼭 불러달라는 청을 했고 나는 열창을 했죠. 그리고 그곳에 계신 귀빈들은 모두 큰 박수를 보내주었어요. 그렇다면 그곳에 계신 분들은  이 곡이 금지곡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나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어요. 그래서 레코드 회사들이 내 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든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어요"라고 말했다. 

 

가사는 영화의 내용을 따라 화자가 상대를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영화에서 화자는 섬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 서울에서 약초를 캐러 온 한 대학생과 눈이 맞아 임신을 한다.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고 남자를 찾아 서울로 올라가보지만 남자는 이미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였다. 화자는 자살을 생각할만큼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지만 그럼에도 그 남자를 기다리며 동백이라는 술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 사람을 만나지만 그 사람은 유학중에 만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말았다. 상심한 화자는 아이를 넘겨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동백꽃은 엄동설한에 피는 꽃으로 꽃말은 절개와 지조를 아울러 이르는 절조라고 한다. 

 

20221103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헤일수 없이 수 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어느덧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 

[1950s/1953] - 봄날은 간다 - 백설희

[1960s/1962] - 밤안개 - 현미

[1960s/1964] - 하숙생 – 최희준

[1960s/1965] - 동숙의 노래 - 문주란

[1960s/1966] - 허무한 마음 - 정원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