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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로의 결혼(Le Nozzi Di Figaro) / 1784 1 수잔나가 거울 앞에서 웨딩 보닛을 써보고 있다. 피가로는 신부의 침대가 들어갈 공간을 신나서 측정한다. 새 방은 알마비바 백작이 마련해 준 것이다. 수잔나는 새 방이 백작의 서재와 가까이 있는 건 백작이 초야권을 행사하려는 의도라고 피가로에게 말한다. 로지나 백작부인이 초인종을 누르고 수잔나는달려나간다. 피가로는 나가며 백작의 의도를 알았다며 자신에게 계획이 있음을 암시한다. 피가로가 떠나고, 바르톨로 박사와 하녀장 마르첼리나가 함께 도착한다. 피가로는 이전에 마르첼리나에게 많은 돈을 빌렸고, 약속된 시간에 갚지 못하면 담보 대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바르톨로는 피가로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르첼리나를 변호하기로 동의하고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바르톨로가 떠나고, 수잔나가 돌아와 .. 2012. 6. 10.
서태지와 아이들 1992 서태지 19720221, 이주노 19670210, 양현석 19691202 그룹 시나위를 나온 서태지는 시퀀서로 곡 작업을 시작했다. 지독히도 기나긴 시간이 걸린 난 알아요의 데모는 놀랍게도 록 밴드의 주자가 가진 마인드와는 한참 떨어져 보이는 랩송이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MC 해머(Hammer),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 등의 흑인 음악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한국말로 된 랩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힙합에 대한 정식코스를 밟기 위해서 양현석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했으며(비록 춤 선생의 군 입대로 금방 깨졌지만), 데모 테이프가 완성 된 뒤에는 양현석과 그와 춤에 대한 영감을 주고받던 댄스 황제 이주노를 맞아들여 댄스 팀을 만들었다. 이들의 데.. 2012. 3. 25.
고 오용록 선생님 오용록 선생님 1주기 계절학기때 타대생으로 선생님의 '국악개론' 수업을 들었었는데... 참 쉽고 재미있던 수업이였다. 그리고 수업때 국악을 참 사랑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듣겠노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부고 소식에 한숨만... 수업 땜에 1주년 추모식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내 가슴 속 국악에 대한 자양분으로 남아 계실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는데 이토록 사진 한 장 없다니... 위의 사진은 2004년 모습이시라는데... 어느 개인 사이트에서 퍼왔다. 선생님과 수업 때 여러 곡을 들었지만... 그래도 수제천이 제일 많이 생각난다. 그 이유는 ...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비밀이다. 2012. 3. 23.
Bobby McFerrin 20120308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2012. 3. 13.
어떤날 조동익 19600306 이병우 19650122 1980년대 주류의 물살을 탄탄하게 견제해 주던 동아기획의 절정은 들국화였지만, 이 꽃밭을 오래 가꾸며 향기가 떠나지 않도록 한 것은 바로 그룹 어떤날 이였다. 후에 동아 기획에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던 친구 최진영의 소개로, 두 스타일리스트, 이병우와 조동익은 첫 악수를 나눈다. 이 만남은 글자 그대로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감수성만으로 쏘아 올린 역사적인 순간이다. 조동익은 그의 형 조동진의 2집에 어떤날이라는 곡을 주며 음악계에 첫 발을 디디게 된다. 조동진이 칭찬했다는 이 곡은 곧 이들의 팀 이름이 됐으며 허영자가 쓴 가사처럼 “버려진 아름다움이 몸을 부벼 외로이 모여 있는" 음악으로 전설을 만들어 간다. 이들은 1985년 최성원이 기획한 에 너무 아쉬워.. 2012. 3. 3.
연말 가요시상식에 대한 단상 - 현지운 / 2010 갈등의 시절이다. 갈등은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대부분은 그저 집단이기주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과 남한의 관계는 (지금의 정권이 지나면 다시 좋아지리라는 기대와 함께) 표면상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고 여야의 관계는 날치기가 횡행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그런가하면 공격적인 선교로 가끔씩 세계를 놀라게 하는 우리나라의 기독교도는 일명 ‘땅밟기’라는 작태를 통해 그 특유의 배타성을 다시 한 번 드러냄으로써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현 정권 들어 이래저래 수난을 겪는 불교계는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를 아예 체념한 것처럼 보인다.이런 모습은 가요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일어난다. 물론 가요계뿐만 아니라 연예계 전체에서도 이런 모습은 .. 2012. 2. 17.
고 작곡가 이영훈 선생님 19600306 - 20080214 어제 우연히 이문세의 트위터에서 이영훈님의 추모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분이기에 이렇게라도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이문세의 3집과 4집 작사 작곡란에 유독 많이 써 있는 이영훈이란 이름 때문에 처음으로 작곡가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위의 글은 웹진 이즘에서 지운이란 필명으로 글을 쓸 때 이영훈님에게 받은 편지다. 당시의 기분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쭐’했던 기억은 나는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이 편지는 내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되었다. 이상하게 이영훈님의 노래는 자꾸 생각이 나서 듣게 된다. 80년대의 메인스트림은 조용필과 전영록, 김수철, 이용, 주현미로만 인식되고 언더는 유재하, 들국화, 어떤날을 지지하.. 2012. 2. 15.
임종환 19640417 - 20100523 싱어송라이터 장덕의 추모앨범에서 내가 만나는 하나님께라는 곡으로 음악계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한 임종환은 1980년대에 인생별곡으로 인기를 모았던 통기타 가수 이용식의 지도아래 난 널 믿어란 곡을 발표하면서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와 같은 느낌의 이 곡으로 자주 변진섭으로 오해 받았던 그는 1집에서 기다림은 기다림으로나 내가 아닐 꺼야, 유리창에 비친 슬픔과 같은 곡으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레게음악을 처음으로 연구하고 도입했던 벗님들 출신의 김준기가 프로듀서로 나선 그의 두 번째 음반은 온통 레게의 숨결이 느껴지는 음반이다. 김건모의 핑계를 시작으로 마로니에, 투투, 룰라, 닥터레게, 김흥국 등으로 인해 90년대에 랩과 함께 새로운 문법의 하나로 떠오.. 2012. 2. 7.
장덕 19620421 ∼19900204 “잊지 말아요/ 우리의 사랑을/ 잊지 말아요/ 우리의 기억들을/ 이제는 시간이 됐어요”. 한창 성장기에 있던 약관의 한 뮤지션은 이와 같이 이별의 가사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모든 음악인의 죽음은, 팬들에게 공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괴로움을 동시에 안겨주기 마련이지만 나이 어린 스타일수록 그 황당함은 배가된다. 우리 음악계의 지각변동을 바로 목전에 둔 1990년,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장덕은 '80년대 추상적이고 모호했던 가사를 가지고 있던 음악들의 모습을 띠고 있으면서도 당시 10대들이 품고 있던 생각을 표출할 수 있었던, 신세대적 감각이 출중했던 프로듀서 중의 한 명 이였다. 그녀의 음악은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그로 인한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한 결 같이 어둡게 이별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2012.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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