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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s/1979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 양희은 / 1979

by Rainysunshine 202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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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교회를 6년 정도 다녔다. 건물 꼭대기 층에 세 들어 사는 아주 작은 교회였는데 그곳에서는 토요 모임 전에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눠주던 악보에는 복음성가뿐 아니라 1970년대 가요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난 상록수란 곡을 알게 되었고 아침이슬, 금관의 예수, 작은 연못 등도 알게 되었다. 특히 상록수는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가 주는 용기 어린 표현에 감화되어 악보에 적혀 있는 기타 코드로 자주 연습하곤 했다. 내 노래를 듣던 작은 형은 이 곡이 양희은의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당시 나는 돈만 생기면 습관처럼 들르던 레코드 방이 두 군데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양희은의 앨범도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곳에서 양희은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란 제목이 붙은 테이프를 발견하곤 내가 알고 있는 상록수의 가사와 제목이 너무 닮아서 별 고민을 하지 않고 집어 들었다(LP는 하얀 바탕에 빨간 직인이 찍힌 것이 앞면이지만 테이프는 LP판 뒷면의 파마한 머리에 웃고 있는 사진이 앞면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늙은 군인의 노래가 빠져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아마 뜻하지 않게 보물 같은 앨범을 발견했던 기억이 있는 분들은 내 기분을 잘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환희와 전율을 말이다. 음악을 폭풍 흡입하던 시절의 감성과 만난 이 앨범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다. 그 충격으로 양희은의 곡들을 더 열심히 찾아듣기 시작했고(물론 그 전에도 몇 곡은 알고 있었다. 가령 아름다운 것들이나 일곱 송이 수선화, 내 님의 사랑은, 하얀 목련) 그 사이, 백구, 인형, 불나무 등의 주옥같은 곡들이 금괴처럼 발굴되어 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양희은을 어느 정도 알게 되자 김민기(1951031 - 20240721)라는 산이 나타났다. 양희은이 부른 상당한 퀄리티의 곡들에서 대부분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의 곡들은 이주원의 곡에서 느낄 수 있는 서정성과는 또 달랐다. 어찌되었건 1970년대 청년문화를 향유했던 사람들처럼 나도 불가항력적으로 그 매력에 쉽게 빠져들었고 그로 인해 1987노태우정권에 의해 해금된 금지곡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창고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빠져나오는 강렬한 빛은 완전히 나를 잠식해 버렸다.

19775, 김민기가 제대한다. 그리고 9년 만에 대학도 졸업한다. 1978양희은도 대학 생활을 7년 만에 끝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김민기양희은에게 선사하는 졸업선물이다. 1972 양희은2집 이후 둘은 오랜만에 다시 뭉쳤다. 하지만 김민기는 선물하는 사람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월북 작가처럼 금지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유신반대운동에 그의 노래가 대대적으로 쓰이면서 당국의 심한 감시를 받아야 했다. 군에 있을 때 이미 그 일로 인해 고문을 받았고 최전방으로 재배치되어 영창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제대 후에도 유명세는 줄어들지 않았으니 음반 허가가 날 리 만무했다. 작곡가의 이름은 양희은송창식, 김민기의 대학 동기 김아영으로 채웠다. 하지만 이 음반은 발매 후에 군에서 군가를 요청받은 김민기가 퇴직하는 선임하사의 술자리 푸념을 듣고 만들었다는 늙은 군인의 노래 때문에 방송 금지는 물론 판금조치까지 당한다.

 

비록 후에 늙은 군인의 노래가 없는 것에 분통을 터트리긴 했지만 그 곡을 빼고 들어도 다른 곡들의 수준이 워낙 뛰어나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양희은의 시원한 보컬이 일품이다. 들을 때마다 독재시대에 신음했던 민중들이 카타콤에서 로마의 압박을 견뎌내며 절대자를 찾던 초창기 예수신자들과 오버랩 되었다. 이 곡은 김민기김지하 시인의 희곡 <금관의 예수> 초반에 나오는 시를 토대로 작곡한 곡이다. 김민기는 이 희곡의 첫 공연지였던 원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곡을 썼다. 원래 금관의 예수였으나 이 앨범에는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란 제목으로 실렸고 당국은 여기에란 부분을 그곳에로 바꾸도록 명령을 내렸다.

 

천릿길의 명랑하면서도 쾌활하고 씩씩한 기상은 앨범 전체에 퍼져있는 무기력감을 어느 정도 상쇄시킨다. 이 곡은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 품고 있는 역경에 대한 극복을 노래하면서도 이상향에 대한 낭만이 느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시대를 긍정으로 돌파하려는 슬프지만 굳센 기운이 있다. 이렇게 어떻게 힘든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 못지않게 리스너들을 사로잡는 것은 독특한 실험정신이다. 밤뱃놀이는 대금과 태평소를 비롯해 국악기로만 편곡된 곡으로 양희은과 명창 김소희의 딸 김소연이 독특한 어우러짐을 발산한다. 또한 요즘에는 잘 볼 수 없지만 한 때 여자아이들을 상징하던 놀이인 고무줄놀이는 여자 아이들이 한 번은 불러봄 직했을 만한 멜로디와 재미있는 가사로 구전동요의 멋을 살리고 있다. 거기에 알캉달캉의 그 짧은 여운이 주는 비범함과 동요 오빠생각을 연상케 하는 식구생각, 방황하는 지식인의 고뇌가 느껴지는 두리번거린다, 다시 한 번 절대자를 향해 희망의 동아줄 던져보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까지. 앨범은 시대의 아픔과 실험정신, 아름다운 멜로디가 지닌 대중적 감수성을 모두 포착하며 곳곳을 한 땀 한 땀 수놓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걸작을 내놓고도 둘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앨범 후 여전히 가난했던 스물 일곱살의 꽃다운 양희은은 자살을 꿈꾸었고 자신의 이름을 맘껏 공표할 수 없었던 김민기는 될 대로 돼라는 심정으로 동일방직사건을 노래 굿으로 만든 생애 최대의 걸작 <공장의 불빛>을 완성하곤 10.26 이후 완전히 귀농한다.

 

김민기가 제대 후 공장에서 일할 때 같이 일하던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지었다는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은 제목이 길어서인지 후에 상록수란 이름으로 불린다. 1997IMF의 외환위기에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곡으로 선정되어 공익광고에도 쓰였으며 골프 선수 박세리U.S 오픈 맨발투혼과 함께 세간에 각인되었다. 또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청곡으로 알려져 노대통령의 장례식에 울려 퍼지기도 했다. 2020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다시 부르는 상록수 2020이란 제목으로 코로나 전염병으로 애쓰는 전세계 의료인들을 위한 헌정곡으로 사용했고 4.19 혁명 60주년 기념식에서도 불렀다.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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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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