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면서
달하우스(Carl Dahlhaus, 1928~1989)의 학문적 관심은 어느 한 분야에 집중되었다고 말하기를 어렵게 한다. 그만큼 그의 관심분야는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음악미학, 음악역사이론, 음악이론, 무대음악 분야는 그가 두드러지게 관심을 보인 분야이고, 그 밖에도 그의 관심 밖을 벗어나는 부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그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음악미학 분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서 가운데에서 음악미학에 관련된 것이 많은 것도 그 확실한 증거가 되지만, 여타의 다른 음악논의에서도 미학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가 음악미학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 책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음악미학』(1967), 『분석과 가치판단』(1970), 『바그너의 음악미학』(1971), 『낭만주의와 모더니즘 사이』(1974), 『절대음악의 아이디아』(1978), 『음악이란 무엇인가』(엑게브레흐트와 공저,1987), 『고전주의 미학과 낭만주의 미학』(1988)1). 이 중에서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고 그룹을 이루는 것들이 있다. 한 그룹은 『분석과 가치판단』·『음악이란 무엇인가」이고, 다른 그룹은 『음악미학』·『고전주의 미학과 낭만주의 미학』이다. 첫 그룹은 음악미학에서 자주 보는 개념들 중심으로 논의되었으며, 달하우스의 개인적 견해도 비교적 잘 드러난다. 두번째 그룹은 18·19세기의 음악미학의 역사에 관해 순서적으로 다룬 책들로서 각 시대의 인물들이나 주제들을 다룬다. 각 그룹의 책들은 상호간에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양 그룹 간의 관련성도 대단히 크다. 그의 책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두번째 그룹의 『음악미학』은 『고전주의 미학과 낭만주의 미학』보다 더 먼저 출판되었지만 많은 부분들이 후자보다 더 늦게 씌어졌다. 후자는 장기간에 걸쳐 쓴 그의 미학 논문들을 모아놓은 방대한 것이며, 전자는 후자와 대체적으로 같은 내용을 더 간결하게 만든 책이다.
그는 18세기부터 쇤베르크가 미학의 종말을 선언한 20세기 초까지만을 원래적인 미학의 시대로 본다.그 중에서도 본격적인 음악미학의 시대는 19세기이며,이를 떠받친 사회적 계층은 교양적 시민층이었다고 말한다2).그는 플라톤과 같은 옛 시대의 사상가들이 미학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그들에게 18세기 이후에 나타난 본격적 의미의 미학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3).그의 미학은 18·19세기를 중심적으로 관찰하고,그 이전과 이후를 부수적으로 다룬다.
그의 음악미학을 다루는 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른다.같은 내용이라도 그의 글이 갖는 압축적 논의의 특징이 제거되면,내용적 긴장이 현저하게 감소된다.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여기에서는 그의 생각을 풀어서 설명하려고 한다.그것도 가장 중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주로 부각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그의 사고와 글이 갖는 섬세함이 많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그가 생각하는 음악사의 세 시기,그 시기에 관련되는 미학적 판단 문제,그가 미학을 논의하는 방식,취향판단과 예술판단,현상학적으로 음악을 보는 방식(의도의 문제),주관성의 문제,크나이프의 음악미학과의 비교,이러한 순으로 그의 음악미학을 살펴보겠다.
2 달하우스 음악미학의 출발점
우선 달하우스가 그의 학문활동 초기에 어떤 방식으로 음악미학을 생각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유익하리라고 생각된다. 그가 29세 되던 해에 출판된 「피셔 음악사전」에 쓴 '음악미학'(Musikästhetik) 항목의 첫부분을 보면, 그의 생각이 나타나 있다:
"음악미학은 음악의 철학, 예술작품의 철학적 해석, 예술작품의 음악적 비판이다. 음악미학이 과학적 학문이거나 과학적 학문이어야 하는지는 의심스럽다. 음악미학이 음악 창작과 청취에 대한 음악이론·음악사·심리학으로, 또는 음악작품의 영향사(작용사)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해체되지 않고서 아직까지 가능한지도 의심스럽다. 음악사는 음악미학의 양심가책적 사항이지만, 음악미학도 음악사의 양심가책적 사항일 수 있다. 지나간 시간의 음악이론과 음악철학만이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는 많은 역사학자들의 믿음은 철학적 비판을 견뎌내지 못한다. 개개의 음악적 특징에서 시대정신을 알아보는 많은 정신사가들의 방식도 그 비판을 견뎌내지 못하고, 여러 예술 작품의 특징들을 공통적이라는 이유로 한 개념 안에 모을 뿐만 아니라 그 중요한 특징으로 간주하는 많은 양식 비판자들의 방법도 그 비판을 견뎌내지 못한다. 철학적 비판자는 한 예술작품의 의미가 작곡가가 뜻하는 것과 그 시대가 이해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과 예술작품이 그대로 보존될 뿐만 아니라 변질되기도 한다는 점을 들어 역사가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 비판자들은 정신사가들에게 어떻게 그 시대정신을 알 수 있는가에 관해서 생각하는 일이 드물다고 탓할 수 있다. 왜냐하면 흔히 정신사가들이 음악에서 알아보는 시대정신이란 음악적 특수성과 정신사적 보편성 사이를 중개하는 애매모호한 유사성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비판자들은 양식 비판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응수할 수 있다. 즉 공동적 특징들을 추상화 시키는 것은 음악의 구체사항의 명칭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하기는 하지만, 한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점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라고.4)"
달하우스는 음악미학이 철학·해석·비판의 일종이라고 보는데, 이는 후에 있게 된 그의 음악미학 작업의 특징과 잘 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철학·해석·비판은 '과학적 학문'이 아닌 '정신적 학문'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미학이 엄격한 과학성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에서 '과학적 학문'이라고 번역된 것은 원문에 Wissenschaft로만 나와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과학적 의미의 학문을 말한 것은 분명하다. 그는 조금 더 과학적으로 보이는 음악이론·음악사·심리학·사회학의 방향으로 음악미학이 해체되어야 할 것인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불안한 음악미학의 입장을 점검한다. 그러나 그가 후에 벌인 음악미학의 작업은 그가 미학의 입장을 계속적으로 견지했음을 뜻한다. 그는 미학의 불안한 입지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미학의 해체'냐 아니냐라는 회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미학적 작업에 뛰어든다. 이는 완벽한 것을 기다리지 않는 그의 사고와도 부합된다.회의는 그의 사고전개와 관련된 작업방식의 한 종류이다. 이러한 회의의 연속이 그의 비판적 미학이 지닌 특징이다. 그러나 그는 회의에 머물러서 '할 수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는 그때그때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위에서는 음악미학에 대한 회의를 버려두고 음악미학과 음악사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 부분이 후에 오는 그의 미학 작업에서 중심적인 것이 된다.
그가 위에서 음악미학과 음악사를 관련 시키지만, 거기에서도 회의적인 언급으로 일관되어 있다. 단지 거기에서는 음악미학자와 음악사가가 대면하는 어려움이 "음악미학은 음악사가의 양심가책적인 사항", "음악사는 음악미학의 양심가책적인 사항"으로 표현되어 있다. "양심가책적 사항"은 원문에 "das schlechtes Gewissen"으로 되어 있다. 그 말은 '잘못한 것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무엇'을 뜻한다. 음악사의 변화만 다루면 그 원인이 되는 정신적인 면을 등한히 하는 것 같아 미학을 다루게 되고, 미학만 다루면 실제 음악과는 무관한 생각들만의 나열 같아서 음악사를 다루게 된다.정신적 방향을 연구하여 얻어낸 "시대정신"이나 각 시대의 음악이 가진 "양식적 공통성"을 밝혀내 보이지만, 이것들이 갖는 취약점이 금방 명확해진다. 시대정신을 다루면 어떤 시대의 음악과 그 시대의 사고가 보여주는 유사한 점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하고, 양식적 공통성을 밝혀내는 일에서는 어떤 양식만을 밝혀낼 뿐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질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따라서 양심가책적일 수 밖에 없는 불충분한 작업에 머무르고 만다. 그는 이러한 미비점을 확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의 문제들을 풀어보려고 한 것이 그의 미학작업이다. 그의 음악미학의 중심에는 역사·철학(또는 정신사) ·(양식사 대신에) 분석이 놓이게 된다.
그가 음악사와 음악미학을 밀접한 관계의 것으로 본 것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초기에서부터 미학을 체계음악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도 읽어낼 수 있다. 그는 더 젊고, 더 체계적인 학문인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방향을 학문적 작업의 중심으로 삼지 않고, 미학에 그대로 남게 된다.그에게 음악역사학은 미학과 똑같이 중요한 관심사항이었는데, 이 두 학문방향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두 방향을 공동사항으로 묶어 연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역사에서 나온 예술작품이 역사와 무관해지려는 경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적 특징으로 추상화 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는 19세기에 현실화된 예술작품의 미학이기도 하다. 그는 서로간에 상호 배타적인 정신사·양식사·예술작품의 입장으로 자신의 시각을 돌려가며 예술작품을 관찰한다.
3 음악사의 세 시기와 세가지 판단 카테고리
달하우스의 미학적 작업은 그가 어떻게 서양의 음악미학사를 보고 있는가를 알게 한다. 이를 가장 잘 알게 해주는 책은 그의 「음악미학」이다. 그러나 시대간의 상관관계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압축적으로 쓴 것은 「리스트의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미적 판단의 비판에 관한 연구」(Zur Kritik des ästhetischen Urteils über Listzs "Prometheus")다5). 이 논문의 앞 부분만을 보면 「음악미학」의 큰 줄거리를 읽어낼 수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시대적 순서에 따라 내용을 논하지 않았지만 여기에서는 이를 시대적으로 정리해 보겠다.
1) 17세기에는 작품이 우선적으로 어떤 기능이나 목적을 채우기 위해 설정된 장르의 한 예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이들 음악의 기법에 대한 비판도 그 목적이나 기능을 채우느냐 못 채우느냐의 기준으로 행해졌다(예:폴란드의 악장 스카키' Marco Scacchi'가 독일의 오르갠 연주자 지페르트 'Paul Siefert'에게 비판을 가한 것은 장르의 작곡 규정을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판단 카테고리는 기능에 부합하는 "적절성"에 두어졌다.
2) 18세기에는 장르적 비판 대신에 미적 비판이 점차적으로 자리를 잡아 19세기에는 주도적인 것이 된다. 기능을 채우는 것은 낮은 음악의 특징으로 보아졌고, 통속적(trivial)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기법적으로 잘 된 것 만으로는 본격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했다(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흠없이 작곡되었지만,그 점이 킷츠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해주는 방패막이가 되지 못한다). 독창성과 개성을 가진 형태는 단지 울리는 음향을 이것저것 조합해 놓은 것이 아니라, 결속력과 응집력을 가진 형식을 지닌다. 이러한 예술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고 심지어는 해당 장르보다 더 긴 생명을 누리기도 한다. 기록된 악보로 곧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다. 판단 카테고리는 아름다움에 관해 어떻게 생각(Idee)하느냐는 것이었다[이 생각이라는 말을 이데아라는 그리스어로 되돌리면 그 플라톤적인 성격이 더 확연해진다]. 음악은 개성적이고, 자체로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다(이렇게 음악을 파악한 것이 16·17세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드물게 보는 것이었으며, 18세기에야 점차적으로 보편적인 의식이 되었다). "아름다움"이라는 카테고리는 애매모호한 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심지어는 추한 것도 "성격적 아름다움"(die charakteristische Schönheit)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미학의 일부는 통속미학으로 떨어지고 만다.
3) 20세기에는 "아름답다"는 말만 들어도 킷츠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예전의 미적 판단이 시들어간다.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는 작품'은 의도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배척된다. 음악은 자체로 완결된 형태를 가질 필요가 없고, 어떤 순간이나 시간에 관련된 음악의 창작과 청취를 특징으로 한다(예:슈톡하우젠의 순간형식'Momentform').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은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 보다는 우선적으로 음악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음악을 만들면서 역사적, 정치적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에서는 미학이 끝났다.
그는 『분석과 가치판단』(1970)에서 위의 세 시기에 부합되는 세가지로 구분한다. 즉 "미적 판단(Ästhetisches Urteil)", "기능적 판단(Funktionales Urteil)", "역사화 시키는 판단(Historiesierendes Urteil)"이 그것이다[분석 19-24]. 위에서와 다른 점은 기능적으로 음악이 이해된 시기를 17세기가 아닌 16세기로 말하고 있는 점이다.
1). 미적 판단은 "음악적 아름다움(Musikalisch Schöne)"에 대해 어떻게 생각(Idee)하느냐를, 즉 이 생각을 주대상으로 했다. 이는 19세기에 일반적이었던 판단이었는데, 이 때에 "아름다움"의 개념은 단순하게 정의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그 이유는 아름다움의 개념이 예술적 감정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한 작품이 감정에 의존하여 생각되어진 아름다움의 일부를 갖고 있느냐 않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여기의 아름다움은 생각을 통해 보아진 것이다. 아름다움의 이데아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아름다움은 말로 파악될 수 없었고, 단지 생각할 수만 있었다. 미적 판단은 예술 자체를 마치 종교와 거의 대등한 것으로 본다.
2). 기능적 판단은 음악적 형태가 어떤 일정한 목적을 채울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이다.16세기 음악예술의 기능을 교회적 목적에 맞게 "찬양(Verherrlichung)"으로 이해해야 당시의 기교적인 미사나 모테트의 형태가 "적합한" 카테고리로 이해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음악에서는 앞의 미적 판단이 적합한 것이 못된다.기능적 판단을 주도한 관점은 작곡을 "수공예(Handwerk)"로 보는 것이다.어느 작품이 "교회의식적 음악"이라거나 "무용곡"이라고 말하여 기능을 드러내는 개념은 따라야만할 일정한 작곡기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3).역사화 시키는 판단은 20세기의 새음악(Neue Musik) 이론과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아름다움"(미적 판단)과 "적합성"(기능적 판단) 대신에 "타당성(Stimmigkeit)"과 "진실됨(Authentizität)"을 요구한다. 이 용어들을 사용한 아도르노는 음악 작품이 "타당"하려면 "진실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진실됨"은 역사철학적 시간을 정확히 포착하는 데서 얻어진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음악의 내용을 만드는 것은 경험적 역사가 아니고,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미치는 역사의 의미라고 한다. 타당한 작품은 음악적 관습으로 시대적 의미를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음악이라고 본다. 이런 음악이 진실됨을 가졌다는 것이다. "타당성"은 작곡기술적으로 드러난 것에서 역사철학적 징표(Zeichen)를 읽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포함한 개념이다. 따라서 "타당성"은 작곡기술적 카테고리이자 역사철학적 카테고리이다. 이러한 "타당성"은 정의내릴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서 아도르노는 분석과 해석을 통해 이를 납득시키려고 했다는 것이 달하우스의 파악이다. 역사화 시키는 판단은 한 음악적 형태를 독립되고 종결된 것으로 보지 않고 한 과정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자체로서 어떠한 작품이냐가 아니고, 작곡방법에 변화를 가져다 주느냐 않느냐의 문제이다.
달하우스는 위의 판단 카테고리를 설명하면서 사회적 측면도 빼지 않고 거론한다. 그는 기능적 판단이 교회의식적 기능이나 어떤 세속적 목적을 전승시키려는 주문자들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미적 판단은 청중의 대표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즉 주문자 우선의 사회환경이 청중 중심의 것으로 바뀐 것이다. 반면에 역사화 시키는 판단은 작곡기법의 발전 정도에 관심이 많은 전문가들의 것이 되었다. 미적 판단의 시대에는 전문적 음악가라 할지라도 마치 딜레탄트처럼 미사여구로 음악에 관해 얘기했는데, 역사화 시키는 판단의 시대인 20세기에는 전문적인 용어 쓰기를 강요 당하는 환경이라고 달하우스는 말한다.
그가 위에 예시한 세가지 판단 종류는 모든 종류들을 빠짐 없이 보여 준 것이 아니라, 어떤 두드러진 특징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는 16세기·19세기·20세기의 판단 종류만이 나와 있고, 17·18세기 바로크 시대의 판단 종류가 빠져 있다. 그가 여기에서 16세기를 기능적 판단이 중심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16세기가 17세기 보다 더 분명하기 때문으로 보이며, 또한 16·17세기를 공통적 미학의 시기로 생각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가 18·19세기를 공통성이 강한 부분으로 보는 것은 대체적으로 다른 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달하우스가 더 분명하게 서양음악사의 세 시기를 구분하는 것은 음악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말하는 "옛 음악"과 "새 음악"의 개념에서이다[음악이란 117-121]. 이 개념들은 동시에 음악사에 자주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17세기 초에 새로운 음악과 옛 음악이 함께 양립되어 있었다고 본다. 대위법적인 옛 음악은 낡았다고 치부되지 않았고, 화성학적인 새 음악처럼 용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는 옛 음악과 새 음악의 구분이 뚜렷한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19·20세기에 와서는 새로운 당대의 특징적인 음악이 수세기 전에 만들어진 음악에 대립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 생각이 점차적으로 발생하는데, 이는 "옛것"과 "새것"도 아닌, 그 중간적인 것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중간적인 것은 "고전적"이라고 간주되는 것이었으며, 음악회와 오페라 극장의 지배적 레퍼토리였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 "고전적"인 음악을 중심으로 다른 음악을 보게 된다. 그와 동시에 음악에 관해 형용사적으로 "옛스럽다(alt)"거나 "새롭다(neu)"라는 표현을 썼던 것을 "옛 음악(Alte Musik)"과 "새 음악(Neue Musik)"으로 명사화 시키는 관행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용어는 그 음악이 나타난 시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고전적" 음악보다 더 낯설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는 원래 단순히 "옛스럽다"와 "새롭다"라는 말들과는 달리, "옛 음악"과 "새 음악"이라는 용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복합적인 역사관계를 가리키는 말로 발전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 예로 그는 오늘날이나 수십년 전이나 음악사에서 1730년 전의 음악과 1910년 이후의 음악이 새 음악으로 불리우고 있는 것을 든다. 그는 다른 예로 오늘날 일반인들의 언어에서 바하의 음악이 옛 음악으로, 쇤베르크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새 음악으로, 반면에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만들어져 20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옛 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점을 든다. 이는 "고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옛 음악의 시대는 기능적 판단의 시대와, 고전적 음악의 시대는 미적 판단의 시대와, 새 음악의 시대는 역사화 시키는 판단의 시대와 일치한다.
달하우스가 위의 세가지 판단을 거론하면서 시간적으로 더 먼저 있었던 기능적 판단을 두번째로 다룬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미적 판단의 시대를 미학의 시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미학 논의에서 더 먼저 나온 것이다. 다른 시대의 것들은 이 미학 시대와 대비되어 그 성격이 추출되었다. 미적 판단의 시대는 철학 분야에서 미학이라는 학문이 발생한 시기이기도 하고, 음악사적으로는 자체로 들려지기를 바라는 음악과 그 청중이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고, 오늘날까지도 음악회장에서 중심적 레퍼토리로 남아있는 "고전"을 만들어낸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음악과 미학에 대해 그의 저술작업이 많이 쏠려 있다.6) 이 시기는 기능적인 이전시대와는 반대되는 경향의, '음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절대음악'의 패러다임이다. 이는 기능이나 가사,그리고 기타의 '음악외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로부터 풀려난 것을 의미한다. 이 패러다임이 음악 개념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달하우스는 생각한다[절대음악 7]. 여기에 비하면 기능적 16·17세기는 그의 미학에서 주로 비교를 위해 언급된다. 그것도 18·19세기의 미적 시대를 두드러지게 하는 비교를 위해 언급된다. 반면에 역사화 시키는 판단을 내놓은 20세기에 관한 그의 논의는 독자적 비중의 무게가 실려 있다.7) 그러나 이 시기 역시 미학 논의에서는 핵심 사항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음악청중은 "고전"중심으로 생각하고 19세기적 미적 판단을 한다. 이러한 미학을 "역사화시키는 판단"이 무너뜨리고 싶어하지만, 일반 청취자 층은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음악회장에서 실제로 연주되는 음악이 19세기의 미학과 나란이 가기 때문이다. "역사화 시키는 판단"은 보편적으로 연주되는 음악회장의 음악들과 상당한 정도의 적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18·19세기의 미적 판단이 가진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보면서도 미적 판단을 음악미학의 중심에 놓인 것을 확인한다.
위에서 본 음악사의 시기와 관련되는 미학적 판단들에 관한 설명은 대단히 단순화 된 것이다. 달하우스의 글에서는 이런 식으로 각 시대의 특징이 간결하게 정리되는 경우가 없고, 각 시대들은 탄력적으로 비교되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어떤 사항에 해당 카테고리를 제외하하게 되면, 그의 진술은 이해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위에서 바하는 일반인들이 보통으로 하는 말 가운데, "옛 음악"의 작곡가로 이해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와는 반대로 다른 관련 사항에서 이해되는 바하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바하의 칸타타를 기능음악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수용사적 사실에 어긋남이 분명하다. 이 잘못은 바하의 작품들을 옛 음악으로만 보고 그것을 단순히 재구성하려고 한 데에 기인된다. 바하의 작품들은 19세기에 이르러 재해석되었고, 그 결과로 -18세기 바하 당대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절대음악의 정수 내지 패러다임이 되었다. 바하 작품의 역사적 위대성을 추인한 19세기의 바하 수용사는 바하의 음악이 먼저 심오한 의미변화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발견'되었음을 지적해 준다. 그리고 이 지적은 이렇게 '발견된' 바하 작품들이 '본래의 것'인지, 본래의 것에 대한 왜곡인지를 밝혀야 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역사철학적 교리를 혐오하는 역사가는 이 문제를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로 덮어둔다."8)
바하의 시대는 달하우스 자신의 견해에 따르면 기능음악의 시대이다. 그는 바하 칸타타의 교회음악적 기능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하의 작품을 기능음악으로만 보는 데 대해 위의 인용문은 반대의견을 말하고 있다. 바하의 음악을 발생사적으로만 보고 기능적 옛 음악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왜냐하면 바하의 음악은 영향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는 수용사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으나, 이 경우는 영향사나 수용사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19세기에 바하의 음악이 절대음악의 정수 또는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진 역사가 있기에 바하의 역사적 의미는 이중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바하의 성악곡까지, 교회의 예배의식에서 그 기능이 확실했던 음악까지 새롭게 보아졌다.
그는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품을 분석한다. 여기에서는 바하의 칸타타 106번(Actus tragicus)에 대한 것을 살펴보자[분석 69- 72]. 이 곡은 1714년 또는 1707년이나 1708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된다. 달하우스는 이 작품이 바하의 옛 형식의 칸타타에 속한다고 본다. 그 특징은 칸타타를 형성하는 곡들이 독립적인 특징을 갖지 않고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연결되어 있는 점이다. 따라서 분명하게 단락이 지어지는 형식성이 없다. 이런 형태는 칸타타로 불리우기 보다는 교회 콘체르토(Geistliches Konzert)라는 옛 명칭이 더 어울린다. 바하의 전형적 칸타타는 곡의 테마적 뼈대가 되는 리토르넬로를 가진 다 카포 아리아를 포함하는데, 이는 1714년 이후의 일이다. 여러가지의 것을 접합시켜 놓은 듯한 이 곡은 18세기에는 아주 낡은 형태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형식에는 가사에도 원인이 있었다. 보통 마드리갈 식의 운문을 사용하지 않고 성경을 그대로 음악화 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적으로 어떤 정기적 주기를 형성하지 못하고, 가사 변화에 따른 부정기적 부분들의 결합과 언어를 표현하고자 하는 성격이 두드러진다. 달하우스는 이 칸타타의 곡들을 분석하면서,그 형식적 면이 18세기에는 구식으로 또는 단점으로 여겨졌지만 표현성을 찾던 19세기에는 장점으로 생각된다고 말한다. 미학적 판단 카테고리가 달라지는 것도 그 작품의 역사에 속하는데, 이런 면을 그는 확인하는데 그치고 더 이상의 가치판단을 유보한다. 18세기 바하가 본래적 바하인지 19세기 바하가 본래적 바하인지 혼란이 일어날 정도로 그 의미에 변화가 크고, 어떤 것이 더 본래적일까 하는 물음에 쫒겨 어떤 대답을 할 듯한데, 그런 것이 없다. 그 대신 위의 인용문에서 "역사철학적 교리를 혐오하는 역사가"가 등장하는데, 이는 달하우스 자신이다. 역사적으로 모순되는 사실에 대해 어떤 단일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풀 수 없는 문제로 덮어두는" 달하우스의 역사이해 방식을 뒷 부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달하우스의 논술에는 카테고리의 변화에 따라 내용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견해들을 그대로 놓아두는 경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위의 단순한 시대 구분은 어떤 큰 틀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고, 실제로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일은 그의 글에서 만날 수 없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주변 관련성과 카테고리에 따라 사고하는 것은 그의 시대 이해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다.
4 달하우스의 음악미학 방법
그가 음악 논의에서 미학을 개입시키는 방법은 어느 정도 일정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 특징은 구체적인 논의에서 묻혀지기 쉽다. 그 이유는 그가 논의 대상에 접근하여 그 사항에 맞는 해석에 고심하고,어떤 미리 정해진 원칙을 거기에 적용시키는 데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어떤 미학적인 주장이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글에서 주장을 들으려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확실히 그의 학문방법은 대원칙이나 대전제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학문방법은 대원칙에 의해 일그러진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해 더 적절한 해석을 하고, 그 대원칙의 가능성과 한계를 점검하기에 더 알맞다. 그가 즐겨 작업을 시작하는 곳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 같아서 아무런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곳에 그의 비판적 관심이 발동한다. 즉 사람들이 지나치거나 한쪽에 버려둔 것들이 그에 의해 주목된다. 그의 작업이 성공적인 경우에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적절한 해석이나 평가를 내릴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던 사항들이 정리되고 합당한 이름을 얻게된다. 그런 과정에 가기까지는 어떤 뚜렷한 학문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정도의 방법적 윤곽은 가지고 있다.
그가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들에서는 다음의 언어들이 유난히 자주 사용된다: "문제꺼리이다(problematisch)", "의심스럽다(zweifelhaft 또는 suspekt)", "위태스럽다prekär 또는 heikel)" 등이 그러한 말들이다. 물론 이러한 말들은 어느 곳에서나 무차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문제제기가 각 사항에 맞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때는 위와 같은 간단한 방식으로 되지 않고 대단히 번거로운 경우도 없지 않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그 소개가 간단하지 않은데, 문제의 주변환경(Kontext)을 고루 다룰 때이다.
그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어떤 사고의 틀을 채택하는데, 그 틀은 항상 일정하지 않다. 문제에 맞는 적절한 틀의 선택이 그의 논리전개에 중요하다. 그러한 틀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표적 언어로서는 "카테고리(Kategorie)", "패러다임(Paradigma)", "기준(Kriterium)"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 용어들 모두가 내용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있는 사항들을 정리하기 위한 것들이다. 논의의 대상이 바뀌면 관련되는 해석의 틀도 바뀐다. 그의 미학은 어떤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기 위해 예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미적 주장들이나 이론에 관해 검증하는 성격의 것이다. 이는 그가 음악사가로서, 또는 음악현상의 관찰자로서 문제를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19세기 말의 음악학자들처럼, 또는 18세기의 독일 철학자들처럼 영구불변하는 미적 원칙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제 위의 달하우스의 방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그의 "독창성" 논의로 살펴 보자[분석39-42]. 그에 따르면 "독창성(Originalität)"은 미적 판단의 시기인 18세기 말 이후부터 음악미학의 중심 용어가 된다. 독창성은 "모방"이나 "관습"의 반대개념으로 예술작품이라 불리울 수 있으려면 근본적으로 새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새로워야 한다는 말은 "최초성(Ursprünglichkeit)"도 가져야 한다는 의미까지도 포함한다. 이 최초성은 감정의 최초성에도 해당되어 숙고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오는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내포한다. 그래서 음악은 솔직한 자기 감정의 토로일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당시의 생각에 대해 달하우스는 다음과 같은 이의를 제기한다. 독창성이 뚜렷한 작품들은 몬테베르디·베를리오즈·쇤베르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반면에 매우 숙고한 측면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숙고에 관해 경계하는 당시의 사고가 미적인 것으로부터 왔다기 보다는 윤리적인 것으로부터 왔다고 본다. 왜냐하면 당시의 윤리주의자들은 무언가 계산되어 여과되어 나오는 감정을 덜 인간적인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창성 개념이 조금 더 확장되어 "진짜성(Das Echte)"의 개념이 나왔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 말은 "만들어진 것(Das Gemachte)"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되었는데, 역시 윤리적인 입장에서 나왔다. 즉 만들어진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종의 "사기"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현대성 보다는 "옛것"과 "전통적인 것"을 더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기 때문에 새것을 추구하는 독창성의 개념과 모순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짜성"을 여러가지로 사용하는데, 그 안에서도 모순되는 점들이 공존한다.
1) 아류에 대한 경멸
2) 음악은 교정되지 않은 감정의 움직임을 나타내야 한다는 기대
3) 사기에 가까운 유행을 타지 않는 믿을 만한 작곡기법
4) "진짜 노래", "진짜 교회음악"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의 계승
이러한 것들이 진짜성의 개념에 들어 있다. 그래서 1번과 3·4번이 서로 반대적 방향으로, 즉 1번은 있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3·4번은 이미 있는 것의 반복을 유리하게 한다. 이러한 모순은 개념의 애매함을 불러온다.
위의 독창성 논의는 18세기 말 이후 음악미학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개념 중의 하나이지만 여기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없었다. 그는 독창성 이외에도 여러가지 비슷한 말들이 사용되는 것을 확인한다. "독창성"· "최초성"· "진짜성"이라는 역사에서 이미 사용되었던 유사한 개념들은 나름대로의 환경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는 이를 살펴보아 그 속에 있는 상이한 내용을 밝힌다.
그 다음에는 드러나는 모순들을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해결을 모색하여 더 완벽한 데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보는 논리적 작업의 다음 순서이다. 그러나 그는 이 기대를 부러 충족시키지 않는다. 달하우스는 그 모순들을 뒤늦게 제거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애매하고 모순되는 언어를 분석하는 것이 음악사가의 일인 것은 확실하지만, 이를 축소하여 분명한 언어로 만드는 것에 그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은 애매한 그대로 역사적 효력을 발생했기 때문이며, 논리 때문에 역사를 추상화시키는 것을 그가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논리적 미학자로서 개념의 검증을 통해 모순과 애매함을 논하기도 한다. 그런 후에 그는 역사적 미학자가 된다. 그는 논리의 결과로 어떤 체계를 만들지 않고 역사를 만든다. 그래서 그는 음악미학에 체계가 따로 없고 그 역사가 그 체계라고 생각한다9). 그는 논리적이기만 한 음악미학 체계가 미학의 역사에 왜곡을 가져온다고 본다. 그의 음악미학은 역사적 음악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자체의 독립영역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여기에서 그가 피셔 음악사전에서 말한 "음악미학은 음악사가의 양심가책적인 사항", "음악사는 음악미학의 양심가책적인 사항"이라는 생각이 거듭 확인된다.
달하우스가 역사적 미학에서 모순과 애매함을 파헤치는 것은 어떤 판단이나 생각을 맞느냐 틀리느냐로 확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모순되고 애매하게 진행된 역사의 이해를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해석적 입장이 분명해진다. 이 입장은 관련 사항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그의 비판적 해석은 어떤 신봉할 만한 생각이나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되는 체계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는 음악미학에서 자기 편을 찾으려고 하는 생각들을 머쓱하게 만드는데, 이는 그가 부러 실망을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려는 "...한다(하다)"라는 생각에 충실하고, 사실을 뒤틀리게 할 수 있는 "...해야 한다"라는 언급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5 달하우스의 음악사관
달하우스가 역사성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가 완벽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떤 생각이나 체계를 형성하기에는 역사가 제공하는 미적 기준들이 작품판단의 충분한 조건이 되어주기에는 미흡하다고 본다. 결함 없는 합리적 바탕 위에 음악비평을 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주장을 계속할 경우 분파적 고립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나쁜 경우는 합리적 비평의 불충분함을 이유로 비합리적인 취향판단을 더 우선시하는 일이다. 그는 사람의 인식체계가 모든 부분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그 어두운 부분만이 결정적이라고 큰 소리 치는 데에 위축 되지 않기를 권한다. 합리성과 숙고를 적대시하는 것에 뒤로 물러서는 것은 미학을 포기하는 일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분석41-42].
달하우스는 음악 작품을 한개의 독립된 세계로 보는 낭만주의의 예술이론이 '고전'에 도달한 음악을 탈역사적(脫歷史的)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이론이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작품 창작시의 생각으로부터 동떨어진 생각에 의한 판단이 좋지 않은 의미의 유토피아라고 본다. 이것은 음악이 주는 감정의 변화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기에 적절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역사를, 특히 음악사를 어떻게 보는가? 그는 음악사를 다른 분야의 역사와 무분별하게 같이 혼합하여 해석하는 것을 꺼린다. 이를 한슬릭의 표현인 "음악 특유의"라는 말을 응용해서 말하자면, 그는 "음악사 특유의" 것을 본다. 그는 음악사가 정치사나 사회사와 다른 환경을 가진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정치사나 사회사의 선입견이나 지배적인 의견이 음악사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것으로 본다.10) 그는 드로이젠(J.G.Droysen)의 역사관을 빌어서 정치사를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정치사적 과거란 현재적 사건이나 상황과 연결된 것만을 뜻한다. 그래서 과거의 의미는 역사학자들이 가진 현재적 관심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과거는 현재의 전사(前史)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음악은 그 심미적 현재성 때문에 과거의 작품을 과거의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음악사는 정치사와 다를 수 밖에 없다:
"옛 음악작품들은 단순한 증거서류가 아니라 연주되는 현재의 작품들로 존재한다. 이는 음악사의 기능이 지나간 것들을 기억함으로써 현재의 혼란한 사건들이나 상황들로 안내해주는 가치에만 전적으로 의존되어 규정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음악사편수는 정치사편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당화 된다. 이는 음악사편수가 정치사편수와 다른 것은 과거의 유물들 곧 음악작품들에 현재적 심미가치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일종의 현재가 되며, 그 다음의 부차적인 것으로 옛 사건들이나 상황들을 알게 하는 전거가 된다. 음악사를 엄격한 정치사의 모델에 따라 쓴다고 하면 -예컨데,베토벤의 제9교향곡의 총보는 오직 초연 혹은 재연 때의 사건들을 그대로 재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서류로 보는 것은- 그것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이는 "사건들"에 대해서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작품의 이해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작품들은 -정치사의 사건들과는 달리- 역사연구를 위한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라 바로 대상 자체이기 때문이다."11)
'음악사는 주로 음악작품의 이해를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위의 인용문의 요지이다. 그가 현재를 강조하는 것은 작품의 심미적 현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작품은 과거를 갖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오로지 현재적·심미적 관심만으로 작품을 대하는 뉴 크리티시즘(New Criticism)의 견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이렇게 심미적 "직접성"은 실제로는 직접성이 아니라 역사적 전제 등이 포함된 2차적 직접성일 수 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보면 그의 미학에서 만나는 음악사의 강조는 음악사 자체의 강조라기 보다는 음악작품을 더 음악작품답게 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술작품은 음악사보다 더 우위에 자리하는 개념이다.
그에게 음악의 역사는 예술작품의 이해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작품 밖의 이런저런 원칙에 의해 함부로 다루어질 수 없는 무엇이다. 그러나 그는 작품과 관련된 원래의 과거적 생각으로 그 작품의 일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가 보는 작품의 역사에는 발생사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작용사도 해당된다. 그는 음악의 과거를 관찰하는 일이 모든 면에서 과거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과거 시대의 전제와 우상들로부터 생겨난 통찰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우리가 그 전제들을 공유하고 그 우상들을 숭배해야할 필요가 없다."[음악미학 132]). 그는 스스로 현재에 서 있는 사람임을 명백히 하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역사를 이렇게 저렇게 고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역사는 결점을 가진 그대로 역사이고, 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해서 고쳐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옛 카테고리로 옛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가 보여주는 카테고리들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어떤 역사적 사실을 완벽하게 객관화할 수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역사적인 음악은 우선적으로 그 당시의 전제조건을 통해 보아야 현재의 관심사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역사가 드러나며, 그 후에야 현재의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인식들이 얻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가능한한 옛 카테고리로 옛 사실을 보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에 필요로 하는 것이 역사에서 단절되어 한켠으로 제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식들이 새로이 얻어지기 보다는 보존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음악미학 132]. 그래서 그는 역사에서 현재에 필요한 인식들을 찾는 일이 음악사가의 중요한 동기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소용될 수 있는 것을 망각으로부터 밝혀내는 일은 역사가를 위한 훌륭한 동기들 중의 하나이다"[음악미학 148]라는 것이 그의 미학책 맨 끝 문장인데, 이는 자신의 역사주의적 미학에 대한 변호로 들린다. (그는 한편으로 역사적인 옛 음악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현대음악에 대해서도 부단하게 발언해 왔는데, 여기에서는 어떤 인식의 추구보다는 적극적인 의견표명이 두드러진다.).
그의 역사적 사고는 역사적 미래에 어떤 종말을 상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거에 뿌리를 대고 있는 현재가 성장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18세기의 역사철학이 갖는 역사에 대한 어떤 목표적 단일 결론이 없다. 그는 단일 결론("인간성 형성")을 상정하여, 그것으로의 발전이 역사라고 보는 헤겔식의 역사철학이 갖는 어려움을 열거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편으로 세계사의 역사철학적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킨다면 이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인간성 형성'으로의 발전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제 더 이상 독단적으로 판단되고 결정될 수 없다 (1800년 경에는 어떤 부류가 자신들을 계몽적 부르주아로서 이상적 인간인 '세계시민'이라고 보고,그 입장에서 그러한 판단을 했다). '하나의' 인간성이나 '하나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끈질긴 이해와 노력이다. 다른 것,그리고 처음에 이상스럽게 보인 것을 다른 그대로 관용하는 것 뿐 아니라(관용은 낮게 평가한다는 뜻도 포함한다), 존중하기까지 하는 이해의 노력이다."12)
그는 어떤 일정한 계층이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발전'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18세기 계몽주의가 강조한 개념 중의 하나인 "관용"이라는 말을 "존중"이라는 말로까지 확대시킨다. 이러한 생각을 끌어내는 그의 언어는 '열광적' 성격의 것이 아니다. 관용이나 존중이라는 말은 투쟁적이거나 한쪽으로 몰아붙이는 성격을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싸움을 말리거나 공존을 주장한다. 이러한 윤리적 입장은 미리 결정된 성격의 것이라기 보다 18세기의 역사철학이 갖는 결점을 따져보고 방향 잡힌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인 기준은 그의 작업에서 흔적을 남긴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선호하는 작곡가의 한 사람인 쇤베르크가 19세기적 미적 카테고리로 생각하는 곳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아도르노처럼 쇤베르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루하다거나 무지하다는 비난을 퍼붙지 않는다. 또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미적 강자)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미적 약자) 주로 듣거나 옹호하는 오락음악을 "나쁜 음악"으로 매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교양음악의 질적인 면에 강점이 있음을 인정하며 무조건적으로 약자의 편을 들어 사회적 카테고리로 미적 카테고리를 대신하도록 만들지 않는다13). 이러한 특징은 위와 같은 문제에서 분명한 견해를 밝힐 것을 바라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실망시킬 것이다. 그는 자신을 윤리적 교사로 보는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구분하는 윤리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어떤 한쪽의 윤리적 정당성을 모든 곳에 적용시키거나, 미래에 대한 어떤 결론을 근거로 어떤 하나를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생각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6 취향판단과 예술판단
달하우스는 또다른 판단 카테고리로 취향판단과 예술판단을 자주 거론한다. 이는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해석하면서 나온 구분이다. 예술판단이란 작품의 형식·구조·기법 등과 관련지어진 판단이며, 취향판단이란 위와 같은 것과는 상관 없이 어떤 음악을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달하우스는 칸트에게 이러한 양면적인 판단이 있지만 무게가 취향판단에 더 실려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칸트는 예술적 미가 의도적인 것일지라도 비의도적인 것처럼 숨겨져야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음악미학 55-56].
달하우스의 입장은 칸트와 정반대의 것이다. 즉 그는 예술판단에 더 무게를 준다. 이는 그가 순수하게 주관적이기만 한 판단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관적이기만 한 판단에 대립되는 객관적 판단을 말하는데, 이는 주관이 배제된 것을 뜻하지 않고, 주관이 받은 영향을 원인에 비추어 검토한다는 뜻을 가졌다. 그는 음악에 관한 가치판단이 근거없는 것이 아니려면 최소한의 사실판단(Sachurteil) 위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분석13-14]. 이 사실판단은 작품과 관련이 있는 판단을 말하며,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분석에 의거한 판단이다. 그는 테마와 모티브의 발전원칙으로 이루어진 소나타악장을 표현적인 멜로디가 없다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판단은 개인의 취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지에 의한 판단착오라고 말한다. 또한 여러 주관들의 종합을 시도하는 증명주의적 입장도 비슷한 판단착오를 하기 쉽다고 말한다. 즉 유행가를 진짜음악으로, 베토벤 심포니를 공허한 소음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적 문맹에 대해서 아무도 비난할 수 없으나,이 문맹은 미적 판단의 근거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곳에서 "관용"이나 "존중"이라는 말을 생각했을 것 같지 않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필연적으로 음악전문가들의 미학이 되게 한다. 그의 미학이 전문가적이어야 한다고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미학이 갖는 성향은 그러한 방향을 추측할 수 밖에 없게 하고, 특히 해당 음악의 미학이나 기법적 조건과 전혀 관련 없이 행해지는 가치판단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 가운데에 은연 중에 드러날 뿐이다.
7 의도의 문제
달하우스는 음악의 구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이 듣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 읽혀진다는 사실도 함께 말한다. 즉 음악은 듣는 사람이 가진 어떤 의도에 따라 들려진다는 것이다. 그 쉬운 한 예로 삼화음 DBG와 CEG가 각각 딸림화음과 으뜸화음으로 읽히고, 이 두 화음의 연속이 하나의 종지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는 악보 상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듣는자의 의도가 그렇게 읽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음악의 의미는 의도적으로(intentional) 존재한다. 즉 청취자가 그것을 파악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라고 말한다[음악미학 23-24]14). 여기에서 "의도적"이란 '고의적'이란 뜻이 아니고, 인간의 의식이 정신적인 무엇인가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기에 그는 소리를 상상해가며 하는 악보읽기가 음악적 의미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읽는 자의 의도에서 음악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소리나는 것만이 음악적 의의를 갖는다는 사고에 대해 비판할 때에 이 "의도적으로"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비판의 예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분석 13]:
1) 박자의 강약 부분이 항상 같은 음향적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달라진다. 이 때에 변하고 달라지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 때에 박자의 강약은 음향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즉 박자의 강약은 "사실적으로(real)"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존재한다.
2)어떤 음악에는 특정한 감정적 성격이 붙어있다.장송음악을 듣고 슬픈 감정적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장송음악으로 알아보는데, 이는 그 음악에 슬픔이 "의도적으로" 존재하고,듣는 사람은 그것을 "의도적으로" 알아보기 때문이다.
위의 두가지는 아무런 사실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으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미학적 생각은 그 존재방식이 "사실적"이라기 보다 "의도적"이다. 음악과 함께 의도에서 의도로 전달되는 음악미학은 물리적인 사실과 분리되는 지점이 없지 않다.
8 주관성
그는 "주관성"을 어떤 발전적인 것을 끌어내는 동력으로 본다. 이는 작곡가의 주관이 역사를 만드는 음악 분야 특유의 성격을 고려한 발상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음악미학의 역사도 여러 주관성들이 살아 움직여서 만들어낸 산물이다. 이 주관성은 어떤 그룹적 규정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개인화는 그룹 규정으로부터 해방된 결과이다. 이 해방은 새로 도달된, 자연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주관성을 불러온다. 주관성이란 사실 통속적 미학에서의 지배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장애물이 아니다... 개성적 판단은 그룹적 규정보다 더 풍요롭다. 개성적 판단이 그룹적 규정으로부터 나온 것임에도 그러한데, 이는 그룹적 규정의 핵심을 보존하면서도, 이를 개성적 반응이 가능할 정도로 확대시킴으로써 미적 대상을 더 구분되게, 즉 더 적합하게, '더 객관적으로' 감지한다. "[음악이란 15)] 여기에서는 개성적 판단이 그룹적 규정보다 더 풍요롭다고 말해지는데, 이 개성적 판단은 그룹적 규정을 포함함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이를 뛰어넘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주관적인 판단이 더 객관적이라는 언급도 나온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그의 『분석과 가치판단』이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객관성"이 논의의 중심에 놓인다[분석 12-13]. 그는 미적 판단이 주관적일 수 밖에 없어서 아무런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 매우 주관적이라고 하면서 그냥 통설적 미학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 그러한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오히려 다수가 취한 쪽을, 즉 그룹적 규정을 몰개성하게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가 취하는 주관성은 몰개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성격이어야만 한다. 그의 객관성은 주관의 배제를 뜻하지 않고 주관을 검증한다는 뜻을 가졌다16). 그에게 객관성이란 주관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의 미학이 대단히 주관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지나치게 감정에 함몰되어 음악의 전제나 조건을 살피지 않는 생각들을 비판할 때이다. 이 때에 그는 스스로 감정적이 되기까지 한다. 위의 객관성 논의도 그렇고, 그 논의와 관련이 깊은 「음악미학」 제14장(제목:"기준들") 의 논의도 그렇다. 거기에는 미적 비평을 상대적인 것이라서 소용 없다고 보는 견해를 맹렬하게 비난한다. 그는 여기에서 마치 '미적 판단에 대한 회의주의'라는 강물에 익사해가는 '음악미학'이라는 아이를 건져내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9 역사음악학적 음악미학
달하우스의 음악미학은 19세기 말에 태동한 초기의 음악학의 생각과는 대단히 다른 곳에 와 있다.오늘날까지도 음악미학은 일반적인 음악학의 분류에서 역사음악학이 아닌 체계음악학에 속한다. 그러나 달하우스의 음악미학은 명확한 역사음악학이다. 귀도 아들러가 1885년에 음악학의 한 갈래로서의 음악미학의 작업영역이라고 생각한 것에는 역사적 관련성이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아들러 225-227]. 달하우스의 음악미학은 아들러가 말한 것중 아주 사소한 부분과만 관련이 있다. 달하우스의 미학은 그러나 전통적 음악미학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음악미학이 역사적 순서에 따라 인물별로 다루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인데, 이는 달하우스 전에도 그러했고, 그의 이후에도 그러하다. 오히려 전통적이지 못한 쪽은 귀도 아들러의 음악미학 착상이다. 그의 음악미학 착상은 전반적으로 당시의 자연과학의 성공에 크게 자극받은 것으로서 역사와 상관 없이 존재하는 "예술분야에 효력이 있는 최고의 법칙"[아들러 230]을 찾아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미학 설정이 초기의 열광을 담고 있다고 하면, 달하우스의 음악미학은 더 냉철한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체계화 시키려했던 19세기적 생각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예술에 대해 가능한 모든 규정들을 미(美)라는 중심 생각으로 그것으로부터 연역해 내려는, 폭력적이고 체계지향적 충동에 의해 부과된 노력들 보다 심하게 미학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은 없다... 체계 속으로 짜맞추어지는 것이 사유의 참됨을 보증하거나 강화해 준다는 확신은 20세기에는 좌절된, 19세기의 유토피아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미에 대한 생각들이 위계적 체계를 갖지 않고, 다른 그대로 병존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름다움 아래에 위대성, 심오성, 완전성 등을 체계화 하려한데 대해서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음악미학 134].
10 크나이프 음악미학과의 비교
체계음악학 내에서의 음악미학을 살펴본 크나이프의 견해와 달하우스의 견해를 비교하는 일은 의미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두 사람의 미학적 견해는 "체계적"이라거나 "역사적"이라는 명칭으로 분명하게 가를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는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달하우스는 음악의 해석에서 카테고리를 잘못 적용하는 것을 음악미학에 합당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크게 탓한다. 예를 들어 그는 바그너의 무한선율에 형식이 없다고 비판한다면, 이는 바그너의 음악미학에 합당한 사고가 아닌, 무지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크나이프는 바로 그러한 비판이 바그너의 음악을 몰라서 한 비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한 비판자는 완결되지 못하고 복잡하게 쉴새 없이 이동하는, 노래하기 어려운 바그너 음악과는 화합하기 어려운 다른 미적 견해를 갖기 때문에, 즉 "완결성, 손쉬운 가창성, 단순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한다는 것이다[크나이프 157-8]. 그런 생각을 가진 비판자는 그 음악을 정확히 들었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크나이프는 일반청중의 입장을 미학논의에서 고려한다. 전문가들이 볼 때에 일반 청중은 장기규칙도 잘 모르면서 장기시합에서 훈수하는 귀찮은 존재처럼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나이프는 음악을 듣는 것이 장기시합과는 다르다고 본다, 음악은 다양한 관점에서 보아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음악전문가나 이론가만이 음악작품에 관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고, 애호가들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황폐한 문화적 결과"라고 비판한다[크나이프 160]. 서로 다른 가치판단들은 판단자들이 함부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음악에 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나 관점을 밝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크나이프162]. 크나이프는 어떤 음악에 해당되는 역사적 카테고리에 따르지 않고 현재적인 관점에서 음악을 평가하는 것도 옹호한다. 그 예로 그는 슈만이 바하에 비교하여 스카를랏티를 더 낮게 평가한 것을 들고 있다. 슈만이 현재적 관점에 의거해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데, 그 뿐만 아니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현재적 관심에 의해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크나이프 163].
음악에 관해 어떤 견해를 갖느냐, 또는 어떤 가치판단을 하느냐는 그 옳고 그름이 밝혀질 수 없는 종류의 생각이라서 근본적으로 증명이나 반대증명이 불가능하고 단지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밖에 없다고 크나이프는 말한다. 어떤 규정이나 원칙에 의거하여 어떤 음악의 미적 질을 분석적으로 과학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 개개인들의 생각이 일치하지 못하고,각각의 시대들도 다른 견해들을 보여준다. 따라서 음악에 대한 고정적 의미를 얻을 수 없다. 그러기에 음악미학의 발전은 과학적인 지식의 성장처럼 생각될 수 없고, 문화적이거나 사회사적인 의사변화라고 그는 생각한다. 또한 바그너식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사람과 그의 음악이 단순하지 않고 노래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미적 견해중 어떤 것이 더 낫고 어떤 것이 더 못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크나이프의 견해이다. 이런 것을 확정 짓는 것은 미학적 분석으로 불가능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것 역시도 과학적일 수 없는 사항이라고 그는 생각한다[크나이프 164].
위에서 살펴본 크나이프의 견해는 달하우스의 견해와 상당히 다르다. 크나이프의 견해는 역사적 측면에서 보아서는 달하우스의 견해와 상당히 근접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음악에 관련된 미적 생각(Idee)들을 구분짓고, 그로 인해 더 구분된 판단들을 가능케하는 것이 음악미학에 합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크나이프 183]. 그는 구분됨(Differenziertheit)의 정도가 가치판단의 적합한 기준으로 본다. 이 정도 차이의 도움으로 하는 가치판단이 다른 판단들과 비교되면서 음악미학에서 이룩되어온 여러 개념과의 관계에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가치기준의 증가일 뿐만 아니라, 구분되는 판단들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구분됨이 가치판단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적합한 질이며, 반대로 "진실"이나 "비진실", 또는 "맞다·틀리다"라는 사고는 적합하지 않다. 이는 달하우스의 미학적 카테고리 적용에 흡사한 방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위에서 크나이프가 보여주는 다른 점은 전문가의 입장을 강조하지 않는 점, 어떤 작품이 가진 구조적 특징에 대해서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반대하는 가치판단을 인정하는 점, 또한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적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들이 달하우스의 견해와 다른 점들이다. 달하우스에게서는 판단의 적용이 "맞다·틀리다"라는 식으로 나올 수 있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미적 판단에 입각한 생각으로 15세기의 음악에 대해 판단을 내리거나, 유행가에서 기대하는 것을 교양음악에서도 기대하는 미적 생각은 틀리다는 판정이 나온다. 그러나 크나이프는 이러한 판단을 틀리다고 하지 않고 덜 구분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맞다·틀리다의 기준 대신에 "우리 시대의 기준에 뒤떨어지지 않는가?"하는 기준을 한 예로 제시한다. 뒤떨어진 기준을 갖는 가치판단은 덜 구분되는 것일 뿐, 즉 그 시대가 제공하는 모든 음악적 특징들과 전망에 정통하지 못할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다르게 듣는 청취자들의 의견을 맞고 틀린 것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은 의도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작곡자의 의도를 드러낸다고 여겨지는 개념들에 따른 음악미학이 아닌, 청취자들의 생각에 따른 음악미학을 한편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하우스가 역사적·작곡가 중심적 미학을 생각하는 반면, 크나이프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청취자 중심의 미학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청취자 중심의 미학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는 없다. 단지 우리는 크나이프의 생각이 현실화 되려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들이 많으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을 뿐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미학의 체계화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같이 해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달하우스의 역사적 미학은 -그가 반드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한 것 같지는 않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셈이다.
11 끝내면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달하우스가 이런저런 카테고리를 가지고 분주하게 분석에 임하지만 아무런 방향을 잡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명확한 단일 결론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강한 비판에 어울릴 듯한 강한 자기 주장을 실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역사를 역사 그대로 놓아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고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음악미학을 확인하고 여기에 어떤 수정을 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스스로는 고전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19세기의 사고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역사화된 사고를 하고 있다. 이 역사화된 사고는 어떤 한 미학에 머무르기를 어렵게 만든다. 그에게서 어떤 발전의 사고를 볼 수 있는 것은 18세기의 역사철학과는 다르게 역사 자체와 관련된 부분이 아니다. 역사를 발전적 과정으로 보려면 미래의 어떤 종결적 지점을 설정해야 하는데, 그에게는 그런 점이 없다. 그의 음악미학이 아주 밀접하게 역사와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런 종류의 역사철학은 그에게 너무나도 때지난 생각으로 보였으리라.
그의 글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점이 그의 최대 장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음악미학은 철학적이다. 보통의 미학책에서는 어떤 시대나 인물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평면적인 정보를 전달받는다. 그러나 그는 시대나 인물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고, 독자들도 생각하는 작업에 같이 참여하게 된다. 그의 언어는 쉽게 논쟁적(polemisch)이 되는데, 이러한 특징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보는 것이다. 그는 부단하게 고정관념에 도전하는데, 이런 점은 역사적인 사항을 다룰 때에도 나타난다. 그가 지나간 시대의 모순점과 애매한 점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만 보아서는 그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미학은 어떤 부분에서 아주 단호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은 18·19세기 이전에는 미학이 없었다고 보는 점이다. 이는 미학이 그리스 때부터 시작한다는 보편화된 고정관념과는 다른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20세기의 음악들도 미학과는 멀어진 사고를 하고 있고, 현대에 와서 미학이 존립 자체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미학이 보여주는 결론이 아니라 전제이다. 이 전제 아래 새로 보아진 음악과 미학은 그의 비판적 시각에 의해 풍요로운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음악미학을 풍요롭게하는 것은 그가 논의의 전제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들에 맞추어 전개하는 비판적 검토이다. 그가 기능의 시대, 미학의 시대, 역사화시키는 시대로 다성음악의 역사시기를 구분하는 것 역시 기존의 관찰방법을 버리고 음악사를 다시 본 것인며, 지금까지 있어온 어떤 음악사의 시대구분도 더 잘 어울린다.
여기에서의 음악이란 서양음악을 말한다. 음악작품 개념을 사고의 중심에 놓는 그의 생각은 우리나라의 음악에서는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음악에 음악작품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1993년 현재의 시점에서 보아 작곡의 역사가 60·70여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음악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우리의 경우는 위의 세 시대의 요소들이 어떤 쪽의 우위를 점칠 수 없는 상태에서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적 두드러지는 음악적 민족주의는 기능적인 것인지 아니면 미적 변증을 위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음악적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이 더 적절한가' 하는 기능적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고, 서양음악 전반에 대한 대립적 실천으로 고안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서 억지로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다. 달하우스의 음악미학을 우리에게 맞게 적용시키는 방법은 어떤 유용한 전제를 가지고 우리의 음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스의 철학에서 보는 일련의 음악에 관한 생각들을 제외함으로써 오늘날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음악관과 가까워지듯이, 우리의 경우도 학문적 위엄을 주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우리의 실제적(實際的)·실재적(實在的) 음악관과는 거리가 먼 사고의 우상을 버림으로써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의 음악미학은 그러한 일을 자극하는 종류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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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rteljahresschrift für Musikwissenschaft 1, 1885 p.5-20.[한국어본:음악학의 범위와 방법과 목표]
[낭만음악 1993년 여름호 219-233쪽] 이 글의 인용 페이지는 한국어본을 가리킴.
Dahlhaus,Carl:Musikästhetik(음악미학), Köln 1967.
[한국어본: 조영주 ·주동률 옮김, 음악미학, 도서출판 이론과 실천 1987]이 책의 인용 페이지는 한국어본을 가리킴.
Dahlhaus,Carl:Analyse und Werturteil(분석과 가치판단),Mainz 1970.
Dahlhaus,Carl:Wagners Ästhetik(바그너의 음악미학),Bayreuth 1971.
Dahlhaus,Carl:Zwischen Romantik und Moderne(낭만주의와 모더니즘 사이), München 1974.
Dahlhaus,Carl:Grundlagen der Musikgeschichte(음악사의 바탕), Köln 1977.
[한국어로 지금까지 번역된 부분:제3장 음악사에서 사실이란 무엇인가]
한국음악사학보 제4집 1990,149-160.제1장 음악의 역사는 쇠퇴하는가
한국음악사학보 제5집 1990, 137-154쪽.제5장 역사주의와 전통
한국음악사학보 제6집 1991,127-146쪽.제4장 역사는 주체를 가지는가
한국음악사학보 제7집 1991, 87-99쪽.제7장 가치판단,역사의 목적인가 전제인가
한국음악사학보 제8집 1992, 131-156쪽.제6장 역사에서의 해석학
한국음악사학보 제9집 1992, 111-126.제10장 수용사의 문제점들
한국음악사학보 제10집 1993,189-202쪽.]이 책의 인용 페이지는 한국어본을 가리킴.
Dahlhaus,Carl:Die Idee der absoluten Musik(절대음악의 아이디아), Kassel und München 1978.
Dahlhaus,Carl:Schönberg und andere(쇤베르크와 기타 등등), Mainz 1978.
Dahlhaus,Carl/Eggebrecht,Hans Heinrich:Was ist Musik(음악이란 무엇인가),Wilhelmshaven 1987.
[한국어로 지금까지 번역된 부분:제1장,음악 "그것"은 있는가?]
음악과 민족 제2호(1991) 42-47쪽.제2장,'음악' 개념의 유럽적 전통
음악과 민족 제3호(1992) 84-90쪽.제3장,"음악외적"이란 무슨 뜻인가?
음악과 민족 제4호(1992) 109-116쪽.제4장,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
음악과 민족 제5호(1993) 134-142쪽.제5장,옛음악과 새음악
음악과 민족 제6호(1993)
Dahlhaus,Carl:Die klassische und romantische Musikästhetik(고전주의 음악미학과 낭만주의 음악미학), Laaber 1988.
Kneif[크나이프],Tibor:Musikästhetik(음악미학)↗Einführung in die systematische Musikwissenschaft(Dahlhaus 편찬),Köln 1971.
조영주·주동률 옮김:음악미학(달하우스 저),도서출판 이론과 실천 1987, 149-184쪽]이 책의 인용 페이지는 한국어본을 가리킴.
Stephan,Rudolf:Das Fischer Lexikon Musik,Frankfurt am Main 1957. Szilasi,Wilhelm:Einführung in die Phänomenologie Edmund Huserls (에드문트 후썰의 현상학 입문),Tübigen 1957,p.22-23.
홍정수:미학적 음악론,정음문화사 1986년.
1.참조:참고문헌.
2."전반적으로 음악미학은 교양있는 부르조아 음악애호가들의 정신을 대변하는데...이 정신은 18세기에 발흥하였으며 20세기에 와서 붕괴의 위험에 놓여 있다...음악미학은 본질적으로 19세기적인 현상이다[음악미학 3].달하우스는 18세기를 더 자세하게 말하면서 미학의 시대가 '미학'이란 용어가 발생한 18세기 중엽부터 시작된다는 언급을 하기도 한다[고전주의 14].
3."엄밀하게 말하면 고대나 중세의 미학이란 없다."[음악미학 9]
4.Rudolf Stephan (편찬):Das Fischer Lexikon Musik,Frankfurt am Main 1957.두드러진 글씨는 원문에 의한 것임.
5.Die Musikforschung 23(1970) 411-419[고전적 401-412].
6.예:[바그너],[절대음악].[고전주의]
7.예:[낭만주의와 모더니즘],[쇤베르크와 기타 등등].
8.[음악사]↗한국음악사학보 제5집 1990,144쪽.
9."미학의 성립과 발전에 관련된 이러한 역사적 우연과 파행적 측면이 비록 방법론자에게는 혼란스럽고 의심스럽기조차 하겠지만,역사학자에게는 매우 매력적 측면이기도 하다.미학의 체계는 미학의 역사이다."(두드러진 글씨는 필자에 의한 것)[음악미학 10]
10.[음악사]↗한국음악사학보 제5집 1990,137쪽.
11.[음악사]↗한국음악사학보 제5집 1990,138-139쪽.원래의 번역문은 필자에 의해 약간 수정되었음.
12.[음악이란]↗음악과 민족 제2호,음악 "그것"은 있는가?,46쪽.
13.[음악이란]↗음악과 민족 제5호 1993,136쪽과 140쪽.
14.음악미학 한국어본은 intentional을 "지향적"이라는 말로 번역했다.이는 후썰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의도 intentio'의 중심적 의미를 전달하는 좋은 번역이지만,언어의 직접성이 덜한 것 같아 여기에서는 의도라는 말로 바꾸었다.후썰의 현상학에서 "의도"란 우리의 의식이 무언가를 지향하는 것을 가리킨다.의도는 의식으로부터 나오지만 의식 밖에 있으며,의식이 창조적 활동을 하도록 만든다.이 활동 자체는 의도가 아니고,창조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능력이 곧 의도이다. 참조 Wilhelm Szilasi:Einführung in die Phänomenologie Edmund Huserls,Tübigen 1957,p.22-23.
15.[음악이란]↗음악과 민족 제5호.1933.142쪽
16.홍정수 141쪽
[1700s/1723] - G선상의 아리아 - 바흐(J.S. Bach)
[1700s/1720] -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 J. S. Bach
[1960s/1966] - When A Man Loves A Woman - Percy Sledge
[1990s/1997] -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 Sweetbox
[1990s/1999] - Auld Lang Syne: The Millennium Mix - Kenn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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