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급 예술이라 부르는 클래식의 영토 축소는 시대가 복잡해지고 점점 빨라지는 세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대중 음악의 각 분파들은 산업화와 더불어 음악 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했고 대중은 시간 들이지 않고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음악을 시장에서 승리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구 음악의 시작점을 차지하고 있는 클래식은 현대음악으로 넘어오면서 쇤베르그(Arnold Schonberg),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i) 등과 같은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거장들을 탄생시켰고 US 틴팬엘리에 영향을 미치며 스탠더드 팝의 발전에 이바지한 측면도 있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크로스오버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 알레산드로 사피나(Alessandro Safina), 국내뮤지션 뮤즈(Muse) 등으로 대변되는 팝페라가 인기를 얻고 있고 대중 음악 진영에서 클래식을 차용해 만든 경우로, 바흐(J.S Bach)의 Minuet을 편곡한 사라 본(Sarah Vaughn)의 A Lover's Concerto, 라흐마니노프(S. Rachmaninov)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모티브로 만든 에릭 칼멘(Eric Carmen)의 All By myself, 파헬벨(Pahelbel)의 카논(캐논, Canon)을 샘플링한 쿨리오(Coolio)의 C U When U Get There를 비롯한 무수한 음악들, 국내의 경우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구본승과 장동건의 풍경, 엘가(Elga)의 사랑의 인사를 샘플링한 서영은의 사랑의 나라, 비발디(Vivaldi)의 사계(중 겨울)을 샘플링한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 차이코프스키(P. Tchaikovsky)의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신화의 T.O.P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클래식은 세미클래식의 형태로 여러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스코어라는 장르를 만들어 냈으며 뉴에이지 계열이나 유럽의 프로그레시브 록에서도 그 형태와 다양한 유형이 잡종 교배되고 있고 대중음악은 클래식을 샘플링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세션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현을 이용한 편곡으로 곡에 풍성한 클래식 사운드를 표방하고 있다.
특히 성악가와 가수들의 교류는 줄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다. 존 덴버(John Denver)와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의 Perhaps love, 파바로티(L. Pavarotti)가 기획한 시리즈 <Pavarotti And Friends>, 국내의 경우도 테너 박정하와 이문세의 겨울의 미소, 테너 박인수와 이동원이 함께 부른 향수, 이러한 교류를 전략적으로 들이밀고 나온 프로듀서 이혜민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김선민의 페이지 등의 경우가 있으며 공식적인 음반을 내놓지는 않아도 <열린 음악회>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성악가와 가수들의 듀엣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2000년 국내 음악계를 강타한 조수미의 크로스오버 앨범 <Only Love>은 성악가들의 시장성에 대한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비록 이러한 여파가 크게 형성되진 않았지만 대중 음악에 있어서 다양한 소스가 제공된 것만은 틀림없다. 지난해 발표된 임웅균, 이태원, 조수미 등의 크로스오버 앨범들이 별 재미를 못 본 가운데 대중적 지지기반에 다가서고자 노력한 세계적인 바리톤 김동규의 이번 앨범은 가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면의 위치에 있던 성악가들을 본래의 자리로 다시 복귀시키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앨범이다.
기존의 성악곡들로 채운 그의 첫 번째 앨범 <Close To You>는 제목과 달리 대중과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뒤로하고 그는 이번에 노르웨이의 뉴에이지 그룹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의 곡에 시인 이정하, 작사가 한경혜 등의 작사가를 내세워 노랫말을 붙였으며 건반주자 최태환, 바이올리니스트 심사원, 신예 프로듀서로 작곡과 편곡에 능한 김건영 등을 내세워 새로운 음감을 선사하고 있다. 대중음악을 성악적으로 재풀이한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의 La Derniere Rose De L'ete, Dans Le Soleil Et Dans Le를 리메이크 한 여름의 마지막 장미와 그대 떠난 후, 비지스(BeeGees)의 곡을 리메이크 한 Be Who You Are,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의 곡을 리메이크 한 She 등은 대중음악 애호가들이 성악에 대해 갖고 있는 지루하고 느끼한 감성을 뛰어넘는 편안함을 안겨주며 발라드가 가진 깊이를 더욱 높여준다.
테너와 바리톤, 베이스를 넘나드는 그의 음역이 조화롭게 한 쌍을 이룬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은 단연 시크릿 가든의 Serenade To spring을 소프라노 금주희와 호흡을 맞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일 것이다. 일반 대중 가요와 경합해도 손색없을 이 곡은 성악이 주는 평안함과 가사의 유한 심성, 사랑의 태탕한 기분을 10월을 상상케 하며 가슴 끝으로 전해준다. 이외에 웅장함과 비장미, 진취적인 기상이 느껴지는 신세계, 비애미가 허공을 찌르는 너의 눈물만이, 서글픈 사랑의 상념을 삼키게 하는 낯선 재회 등도 외면할 수 없는 선택이다.
자신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김동규의 노력이 어디까지 뻗칠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분야인 바리톤에만 머물지 않고 3옥타브 이상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에게 어떤 장르적인 우회도 거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가 혼자 걷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20207 이즘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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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1800s/1898] - O Sole Mio(오 솔레 미오) - Enrico Caruso
[1980s/1981] - Perhaps Love - Placido Domingo & John Denver
[1980s/1985] - A Love Until The End Of Time - Placido Domingo & Maureen McGovern
[1990s/1996] - Time To Say Goodbye - Andrea Bocelli & Sarah Brigh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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