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s/19972016. 2. 20. 17:00

 

 

고등학교시절 한 친구가 머리를 빡빡 깎고 등장하자 담임은 외쳤다. “넌 도대체 불만이 뭐냐?”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맘먹은 한 아이의 내면적 다짐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표면적으로는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짧은 머리로 랩을 외치는 리아의 첫인상은 그 담임의 편견과 맥을 같이 했다. 더군다나 이미 유채영의 삭발을 본 터라 짧은 머리가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기껏해야 한 순간을 위한 객기 정도. 하지만 TV의 모습이 아닌 앨범을 접하고 나선, 삭발로 자신을 주장했던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나 당시 Zombie란 노래로 인기 있었던 아일랜드 그룹 크랜베리스(Cranberries)돌로레스(Dolores O'Riodan), 대니 보일(Danny Boyle) 감독의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의 주인공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의 반항적인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기존의 사회가 수용하지 못했던 새로움에 대한 불꽃이 일었다.

 

이미 그 토대는 서서히 마련되고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대중음악계는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심하게 충돌하며 극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유행한 복지부동이란 말이 대변해 주듯 기성세대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같은 가치 철학으로 젊은이들을 눌러왔다. 하지만 서태지수시아듀스개성은 이런 몰개성의 획일화를 거부해 젊은 층의 지지를 얻었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것은 자연히 교육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고 서태지교실 이데아, 넥스트Destruction Of The Shell, 젝스키스학원별곡, H.O.T전사의 후예 등은 가치전복을 꿈꾸는 각각의 지지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왔다.

 

이런 맥락적인 흐름을 리아의 데뷔 앨범도 비껴가지 않는다. 개성을 필두로 욕구불만, 복장불량, 가출한 친구에게, 2집의 개똥철학이나 고정관념 등은 기존의 사회가치와 정면 대치를 선언한다. 과연 누가 데뷔 앨범을 이토록 비정치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제목으로 뽑아낼 수 있었던가. 리아 이전에 나온 모든 여성 가수들의 데뷔 앨범을 살펴보라. “조금 튀게 난 살아갈 거야라고 선언하는 이 당찬 신예는 이전의 모든 여성 가수들의 데뷔 앨범을 공장에서 만들어낸 인형처럼만들어 버렸다.

 

무엇보다 그런 도발은 앨범의 제목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리아의 이력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가사의 해석이 요원하지 않다. 히말라야의 자유 속에 살다 온 소녀가 모든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기계 같은 생활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해 보는 것 말이다. 그러면 세상의 번잡함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것 같은 집착이나 졸업에서의 초음파 같은 고성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문제의 접근에 있어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라는 것이 기존의 곡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해법에 있어 거리감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가출한 친구에게에선 서태지Come Back Home처럼 삶의 끝을 본 적이있음에도 아직 젊으니 집으로 돌아오라고 권하기보단 네 아픈 기억을 들어주는 것으로, 역시 같은 주제임에도 듀스개성처럼 넌 변해야 해라고 강권하기 보단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해도 그런 것쯤 신경 안 쓸거라는 자아의 독백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이 앨범이 기존의 가치와 완전히 단절을 선언한 채 역주행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복장불량 같은 경우 복장을 불량하게 해서 개성을 표출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해석되고 유토피아는 어린 시절의 동화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욕구불만은 너무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면 시대를 감안했을 때 데뷔 앨범의 역할은 충분하다. 이런 주제는 김영석의 곡과 넥스트의 세션도 가사와 잘 어울린다. 이후 사랑 노래를 많이 부르기 시작해 <요조숙녀>란 뛰어난 앨범이 나오고 눈물이 크게 히트하면서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럼에도 이때 가졌던 태도는 후에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지현의 출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본다. 

 

20121029 다음뮤직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2012/10/22 - [대한민국] - 리아 197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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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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